알쓸복잡(알고보면 쓸데없는 사회복지 잡생각)

사회복지는 공공재인가? 본문

알쓸복잡

사회복지는 공공재인가?

오아시스(沙泉) 2021. 12. 30. 10:47

  2017년 여름, 제주도에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바뀐 버스노선 때문에 제주 사람들끼리 시끌시끌했던 일이 있었다. 고작 버스노선이 바뀌는 게 별거냐 싶겠지만, 제주도에서 평생을 산 제주 할망들에게는 수십 년을 오일장에 갈 때 타고 다닌 버스가 하루아침에 바뀐다는 것은 고작 버스 번호가 바뀌는 정도가 아니라 세상이 바뀌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변화를 극도로 싫어하는 제주도 사람들인데 새로 생기는 환승 정류장이니 버스전용차선이니 교통복지 카드니 하는 것들은 더더욱 낯설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버스노선 개편에 대한 제주도청의 의지도 강했다. 제주도는 수년 동안 급격하게 늘고 있는 제주도의 인구증가와 관광객의 증가에 따른 교통체증 해소와 주차난 해결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 그렇게 찬반이 나뉘어 변화가 쉽지 않을 것만 같던 제주도 버스노선 개편은 결국 우여곡절 끝에 완전히 새로 바뀌었다. 세상이 3번 바뀌고도 남았을 지난 30년 동안 제주도에 버스노선이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것도 놀라운 일인데 불편함보다 변화가 더 두려운 제주도 사람들의 성향이 더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어쨌거나 버스노선이 바뀌면 뭔가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이었는데 아직까진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는 듯하다. 육지에서 건너온 나로서는 이번 제주도 버스노선이 개편되는 것을 보고 제주도에 대해 다시 한번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


  직업이 사회복지사인 나는 제주도의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바라보면서 사실 좀 부럽다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제주도 버스노선만큼이나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 내가 일하는 사회복지전달체계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나에게 사회복지전달체계가 옛날보다 얼마나 많이 변했는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래, 사회복지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렇게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우리나라 사회복지전달체계는 공공영역을 중심으로 많은 변화와 시도가 있었다는 것은 맞는 말일 수 있겠다. 하지만 정작 사회복지 전달체계의 최일선에 있는 민간영역의 사회복지전달체계는 지난 수십 년간 무엇이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되묻고 싶다. 혹시라도 라떼는 월급을 80만 원 받았다.”라는 이야기는 이제 지겹기까지 하다.

   우리는 시내버스를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라고 생각한다. 공공재는 개인이 일정의 재화를 소비해도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같은 재화의 소비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특성(비경합성)과 대가를 내지 않고도 누구에게나 그 재화가 공급되는 특성(배제불가능성)을 갖는다. 그런데 우리가 공공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시내버스는 생각과는 달리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만원(滿員)이 되면 다른 사람이 버스를 이용하는 것을 방해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고, 또 시내버스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요금을 내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다. 더군다나 시내버스는 정부가 아닌 민간 운수회사가 운영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만 보면 시내버스는 바다 위의 등대처럼 순수한 공공재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고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주도하에 운영되고 있는 시내버스를 공공재가 아니라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앞서 제주도의 사례만 보더라도 버스노선의 개편은 공공(제주도)에서 주도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사회복지는 공공재인가?

  그렇다면 사회복지는 어떨까? 사회복지는 공공재일까? 아닐까?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복지는 당연히 공공재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복지도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이용을 제한할 수 없고, 어떤 사람이 사회복지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혜택을 받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이용에 영향을 미치는 일도 거의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사회복지서비스는 당연히 공공재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만 본다면 사회복지는 공공재가 확실한 듯 보이지만 사회복지사가 보기에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원래 공공재란 것이 반드시 바닷가의 등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급을 시장의 메커니즘(구조, mechanism)에 일임할 수 없는 서비스를 수익자인 국민이 세금을 지불하고 그것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대신 공급하는 서비스의 형태도 포함한다. 대표적인 예로 경찰이나 국방, 소방, 공항, 철도 등의 서비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사회복지도 대국민 서비스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르게 수익자가 (제도에 따라서) 어느 정도 한정될 수 있고, 서비스 공급을 정부뿐만 아니라 일부 서비스영역을 민간에게 위탁하고 있기도 해서 등대처럼 순수한 공공재라기보다는 혼합재의 형태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회복지도 시내버스와 마찬가지로 누구도 공공재가 아니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공공재의 성격이 강한 (사실 나는 완전한 공공재라고 본다) 사회복지서비스를 민간이 위탁받아 제공될 때 완전히 사적재(私的財, private goods)의 서비스로 변한다는 것이 함정이다. 얼마 전 어린이집 운영비를 빼돌려 명품 가방을 산 원장님들이 문제가 되자 적반하장으로 사유재산이라며 단체로 우기던 모습은 차마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참담한 장면이었다. 이 정도 되면 공공의 서비스(공공재)에 대한 민간 기관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알 수 있다. 비단 어린이집 원장님들뿐만이 아니라 민간법인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사회복지기관도 마찬가지다. 일부의 문제를 가지고 전체로 일반화하지 말라는 사회복지사 동지들의 심정도 이해하지만 한쪽만 썩었고, 다른 한쪽은 멀쩡하다고 해서 썩은 사과라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시민들의 사회복지 인식도 그러한 듯하다. 동사무소에서 제공하는 사회복지서비스는 공공재로 인식하는데, 사회복지관에서 제공하는 사회복지서비스는 민간의 서비스로 인식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공공의 서비스를 민간에서 제공한다고 해서 민간 서비스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에서 권한과 책임을 민간에서 위탁받아 제공하는 사회복지서비스도 공공의 서비스(공공재)가 맞다. 우리는 동네에 있는 경찰서나 소방서는 공공기관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회복지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동네에 경찰서가 없으면 주민의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난리를 치듯이 동네에 사회복지관이 없으면 주민복지가 위협받는다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써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경찰서는 도둑을 잡는 곳, 소방서는 불을 끄는 곳, 그렇다면 사회복지관은? 불행하게도 사회복지관은 요가나 에어로빅, 방과 후 프로그램을 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소방서가 불을 끄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 아니듯이 사회복지관도 동네에 있는 경찰서와 소방서와 마찬가지로 지역사회에서 일정한 기능과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회복지사인 내가 봐도 사회복지관은 경찰서와 소방서와는 완전히 다른 기관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사회복지관 또는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이 잘못됐다고 주민들에게만 뭐라고 할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바꿔야 할 사람들은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가와 행정 공무원, 그리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이다. 정치가는 사회복지를 이제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따라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써먹을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로서 사회복지를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일선 공무원들과 사회복지사들도 담당하는 분야에서 이러한 인식은 덮어두고 일만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폭넓게 사회복지의 가치와 전문성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복지의 가치와 전문성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장에서 하는 걸로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그간의 제주도 버스노선만큼이나 케케묵은 기존의 민간 사회복지전달체계를 현실 수준에 맞게 개편하는 일도 필요하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업무 관행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변화가 두렵고 귀찮다고 해서 불편한 방법을 계속 고수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제주도의 대중교통체계 개편이 하루아침에 뒤바뀐 것이 아니다. 버스노선 개편이 시행되기 이미 3년 전부터 최적의 노선마련을 위해 민간 시민과 끊임없는 논의과정이 있었다. 물론 논의과정에서 잡음도 많았다. 새롭고 큰 변화의 시작인 만큼 약간의 혼란은 불가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혼란은 곧 안정을 찾게 되어있다. 그런 것이 인간의 삶이고 능력이다. 사회복지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공공의 서비스로 노선을 변경하기 위해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본다. 장도 담그기 전부터 구더기가 무서워 메주도 못 만든다면 평생 장맛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구더기가 생길 줄 뻔히 알면서도 장을 잘 담가 왔다.


제주도 대중교통체계 개편 이후로 나는 차를 버리고 시내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다. 노선도 다양해지고 편의시설도 많이 개선됐다. 버스 안에서는 와이파이(wi-fi)도 무료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운전할 때는 몰랐던 제주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좀 더 미리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알쓸복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 사회복지사 - ① 전문가의 조건  (0) 2021.12.30
사진찍는 사회복지  (1) 2021.12.30
사회복지와 종교  (0) 2021.12.30
사회복지와 정치  (0) 2021.12.30
복지전국시대  (0) 2021.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