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복잡(알고보면 쓸데없는 사회복지 잡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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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전국시대

오아시스(沙泉) 2021. 12. 30. 10:34

  중국역사상 가장 오랜 분열과 혼란의 시기를 우리는 춘추전국시대(B.C.770~B.C.221)라고 일컫는다. 춘추전국시대는 춘추(春秋)시대와 전국(戰國)시대를 아울러 표현한 것이다. 춘추시대는 기원전 770년 주나라 유왕이 견융의 공격에 죽고 천도한 뒤 진나라가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의 삼국으로 분열한 기원전 403년 이전까지를 말하고, 전국시대는 그 이후부터 진시황이 삼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를 가리킨다. 춘추전국시대에는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고 전쟁이 일상화 되었으며 약자의 삶이 짓밟히는 절망의 시대였다. 반면에 새로운 문화가 보급되고 학문과 사상이 발전하는 등 절망의 어둠은 오히려 새로운 생각에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복지전국시대

  필자가 제주도에 내려와 스마트복지관이라는 새로운 정책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다보니 현재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모습이 바로 춘추전국시대와 같이 분열과 혼란의 시기가 아닐까 싶어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우리나라 사회복지는 최근 수십 년 동안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고 지금도 계속 변화의 중심에 있다.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사회복지서비스의 공급총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복지서비스공급자가 개인사업자를 비롯한 영리민간 형태로 유형이 다양해지면서 복지서비스의 유형도 동시에 다양화 되었다. 더불어 민간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도 활발해지고, 보다 구체적인 성과를 추구하는 모습으로 변화하면서 사회복지서비스 공급을 직접 기획하거나 공급하는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공공부문의 책임성 강화라는 명분으로 이제는 사회복지사뿐만 아니라 공무원이 직접 주도적으로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대가 됐다.

  이렇듯 그 동안 한국의 사회복지서비스 공급체계는 양적증가, 다양화, 복잡화, 시장화, 경쟁심화, 공공성 담론의 팽창, 대안적 서비스 조직들의 약진 등으로 인해 지금까지 사회복지서비스 공급의 핵심적 역할을 해왔던 민간 사회복지법인(또는 사회복지사)들은 말 그대로 ‘혼돈’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더군다나 정권의 교체에 따라 각 정부(지자체도 마찬가지)마다 사회복지정책 전반을 하나의 고유 ‘브랜드’화하면서 이러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거기에다가 제주도에서는 난데없이 (시범사업이지만)스마트복지관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전달체계를 개혁한답시고 기득권과 대립하고 있는 일련의 상황은 마치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와 다를 바가 없는 듯하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복지전국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적 아이러니

  춘추전국시대가 혼돈의 시대라고 해서 역사적으로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전국(戰國)시대는 말 그대로 국가 간의 전쟁이 빈번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나라는 온통 피로 피를 씻는 배틀필드(battlefield)였다. 하지만 계속되는 전쟁은 철기의 보급을 앞당기면서 무기의 발전을 가져왔다. 철기의 보급은 전투력 향상뿐만 아니라 계량된 농기구를 통해 농업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고 제철산업과 상업, 수공업도 더불어 발전하게 된다. 전쟁으로 얼룩진 춘추전국시대가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하나인 중국의 황하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한 시기라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혼란한 시대는 새로운 사상과 철학의 꽃을 피우기도 했다. 춘추전국시대에 각국의 제후들은 부국강병(富國强兵)과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실력을 갖춘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길 원했다. 그래서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오히려 다양한 사상과 학문이 발달하게 된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공자, 장자, 노자 등이 바로 춘추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들이다. 이 사상가들을 우리는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부른다. 제자백가의 사상과 학문은 혼돈의 시대에서 나라를 구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했다. 도덕적인 정치를 강조한 공자와 맹자의 유가 사상, 엄격한 법의 제정과 시행을 강조한 한비자의 법가 사상, 도덕과 법률보다는 자연을 본받는 생활을 강조한 노자와 장자의 도가 사상, 평화 사상의 실천을 주장한 묵자의 묵가 사상 등은 당시뿐만 아니라 현대의 정치와 철학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적 의미는 전체 중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이유는 ‘중국’이라는 하나의 세계관이 형성된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기 때문이다. 주나라 시대의 ‘중국(中國)’은 의미 그대로 제후국들의 울타리에 둘러싸인 가운데(中)에 있는 나라(國)를 가리켰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피부색이 다른 이민족들을 몰아내고 천자(天子)를 보호하는 성읍국가(城邑國家)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면서 국가의 범주가 천하(天下)로 전환되어 넓어졌다. 그 결과 본래의 황하지역 인근 국가와는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던 이민족 국가(춘추 5패) 제, 진, 초, 오, 월 등도 스스로를 하나의 '중국'에 포함된다고 생각하여 중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세계관이 형성되자 서서히 '중국 통일'에 대한 열망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진(秦)의 천하통일로 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쪽 변방의 미개(未開)국가 진나라가 이웃 열강들을 제치고 혼돈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지리적인 이점이나 전투력의 향상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법가(法家)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강력한 사회개혁을 꼽을 수 있다. 진나라는 이른바 변법개혁(變法改革: 법을 바꾸어 개혁을 추구한다)을 통해 전통의 신분질서를 무너뜨리고 출신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법치(法治)에 의해서 나라를 다스렸다. 이러한 개혁의 추진은 왕족과 귀족, 신하들의 어떠한 특권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누렸던 기득권층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2차례에 걸친 변법개혁을 통해 진나라는 부국강병을 이룩하게 되고 전국시대 최강대국으로 성장하여 마침내 천하통일의 주인공이 된다.

 

전통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개혁을 할 것인가

  그 동안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말미암아 사회복지서비스도 눈에 띄게 (양적으로)성장하여 지금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대한민국에서 사회복지정책은 경제정책 등 다른 정책들에 비해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렸었고 그나마 선거 때만 잠시 정치적인 미봉책에 그치고 말았다. 사회복지서비스를 눈에 보이는 양적성장에만 열을 올리다 보니 결과적으로 공급체계 자체가 지금과 같은 복잡성을 증폭하는 꼴이 됐다. 그에 비해 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전문성이나 효과성에 대한 진지한 노력은 미진했다. 그래서 일까? 최근에는 국가가 나서서 이러한 복지시국의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공공성 강화를 위한 새로운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과연 지금의 복지전국시대는 언제쯤 막을 내릴 수 있을까?

  역사는 계속 반복된다고 했던가. 21세기 혼돈의 복지전국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큰 메시지로 다가온다.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출신과 신분을 따지지 않고 유능한 인재를 많이 발탁해 국가적 문제해결을 위한 새롭고 실용적인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또한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사회개혁을 밀어붙였기 때문에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과 개혁에 대한 열망이다. 사회복지를 일방적인 시혜의 산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모든 주민의 삶의 질과 복지 수준 향상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으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 이상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전통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개혁을 할 것인가. 지금의 복지전국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질문에 우리는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

 

※참고문헌: 최재성, 2019, 『사회복지서비스 공급자의 다양화 과정과 비영리민간사회복지조직의 정체성』, 한국사회복지행정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어느 날 진나라 제후 효공(孝公)은 나라를 평화롭게 하고 정치를 안정시킬 대책을 세우고자 신하들과 함께 의논하고 있었다.

-효공(孝公): 이제 나는 법을 고쳐 나라를 다스리고, 풍속과 예절을 바꾸어 백성을 가르치고자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할까 봐 두렵습니다.

-상앙(商鞅): 법은 백성을 사랑하기 위한 방법이고, 풍속과 예절은 일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진실로 나라를 강력하게 할 수만 있다면 구태여 옛 법을 본받지 않았고, 진실로 백성을 이롭게 할 수만 있다면 옛 풍속과 예절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감룡(甘龍): 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백성들에게 익숙한 풍속과 관습을 좇아 가르치면 애쓰지 않아도 공로를 이루고, 이미 시행하고 있는 법을 좇아 백성들을 다스리면 관리도 익숙하고 백성도 편안해 할 것입니다. 만약 예로부터 전해오는 법을 따르지 않고, 법을 바꾸고 또 풍속과 예절을 고쳐 백성들을 다시 가르친다면, 온 천하가 임금에 대해 왈가왈부할까 두렵습니다.

-상앙(商鞅): 감룡 대부께서 하시는 말씀은 보통 세상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개 평범한 사람은 옛 풍속과 관습에 익숙해져 편안하게 지내려만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법을 만들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법에 따라 다스림을 받습니다. 어진 사람은 풍속과 예절을 고치고, 평범한 사람은 그 풍속과 예절에 얽매이게 마련입니다. 임금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왈가왈부하는 것에 꺼림칙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상앙(商鞅, ?~B.C.338): '변법(變法)'이라는 개혁을 상징하는 역사적 용어를 후대에 남긴 중국사를 통털어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긴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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