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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생 사회복지

오아시스(沙泉) 2021. 12. 30. 10:27
헌법 제34조 제2항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제2항의 내용이다. 제1항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적혀 있는데 이 두 조항을 이어서 보면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위해 사회보장과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으로 정리된다. 단어 하나하나 모두 좋은 말이긴 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내용이 너무 두루뭉술하다는 생각도 들고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헌법에서 말하는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 사회보장은 무엇이고 사회복지는 또 무엇일까? 이 둘은 다른 것인가? 직업이 사회복지사인 나도 사실 당장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 아! 다른 사람들은 아예 사회복지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우연히 마주한 한 문장의 헌법조항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불현듯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은 사회복지를 과연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헌법은 국가의 최고 법이고 모든 법의 근본이니까 헌법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이 어떨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법에 대해서 1도 모르는 법.알.못.이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근현대사 속 사회복지의 흔적을 찾아가 본다.

 
근현대사 속 사회복지

  대한민국 국민이면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 헌법은 1948년 7월 12일 제정되어 7월 17일 제헌절에 공포되었고, 총 9차례에 걸친 개헌을 통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헌법이 제정된 지 채 100년이 되지도 않았는데 아홉 번이나 개정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이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지만 수차례의 개헌과정을 거치는 동안 사회복지도 함께 등장했다는 사실은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1948년 제헌 헌법에는 ‘사회복지’라는 말은 찾을 수 없었다. 우리 헌법에는 ‘사회복지’보다 ‘사회보장’이 먼저 등장했는데 그것도 헌법이 만들어진 지 15년이 지난 1962년 제5차 개헌에 이르러서다. 5차 개헌은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가 민정이양을 위해 개정을 단행한 것이었다. 박정희는 개헌안제안이유서에서 「5.16혁명의 이념은 부패와 부정과 빈곤에서 우리겨레와 나라를 구제하고 새로운 민주복지국가를 재건하려는데 있다.」고 썼다. 기관총과 탱크를 앞세워 정권을 장악하고 유신을 통해 독재와 장기집권을 획책한 자가 감히 부패와 부정을 논할 수 있을까마는 역설적이게도 이때부터 ‘복지국가’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고 헌법전문에는 국민의 기본권을 언급했다는 점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1960년대는 우리나라 사회복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변곡점으로 여겨진다. 대표적으로 1961년 제정된 「생활보호법」에는 헌법을 포함하는 우리나라 모든 법제에서 ‘사회복지’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쓰였다. 생활보호법 제1조(목적)에 「본법은 노령, 질병 기타 근로능력의 상실로 인하여 생활유지의 능력이 없는 자 등에 대한 보호와 그 방법을 규정하여 사회복지의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되어있다. 생활보호법 제정을 계기로 1950년을 전후로 하는 외국원조기관으로부터의 시혜적인 사회사업과는 달리 근대적 의미로 전달체계로서의 사회복지 인식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이 군사독재정부의 지배적 담론에 하나로 선언적 의미가 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1960년대는 유신과 독재로 얼룩진 혼란한 사회상황으로 인해 헌법정신은 유린되고, 사회복지는 그저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식의 사회개발의 일환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1970년에 「사회복지사업법」 제정으로 민간 사회복지법인 설립이 본격화되면서 이전까지 진행되어오던 사회사업으로서의 사회복지가 제도적 개념으로 전달체계로서의 인식으로 차츰 변화하게 되었다.

  그 후 사회복지가 헌법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 8차 개헌에 이르러서다. 재미있는 것은 8차 개헌마저도 12.12군사쿠데타로 정권을 빼앗은 전두환에 의해 개정됐다는 점이다. 전두환의 개헌안제안이유서에는 또 이런 문구가 있다. 「새 시대 새 역사를 향한 출발점에 서서 국가의 안정과 번영 그리고 정의사회의 구현을 통하여 새로운 민주복지국가를 건설하여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지니고 있다.」 국민을 향해 발포를 명령하고 법 앞에 안하무인(眼下無人)인 사람이 정의사회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때부터 대한민국 사회복지는 두 번째 대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1980년대는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적 변혁이 요동쳤던 시기다. 이전까지는 사회복지의 인식이 지배집단의 국가최소개입주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 사회보장과 일정하게 차별을 두고 성장해 왔다. 그러나 1982년 「생활보호법」이 제정된 이래 처음으로 개정되면서 사회복지가 공공부조의 성격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이듬해 「사회복지사업법」 역시 1970년 제정된 이래 처음으로 개정되면서 사회복지를 공공의 책임으로 명문화하기에 이른다. 1980년 이후 사회복지는 이러한 공공성의 확장으로 인해 관련법들을 재정비하고 국가의 책임정책으로 발전해 오면서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은 점차 국가적 차원의 사회보장과 동일한 의미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민주화의 시대를 지나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회보장으로서의 사회복지 인식은 점점 더 확장되었다. 2005년 분권교부세의 시행으로 사회복지의 책임은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된다. 그 결과 공공부문의 사회복지 전달체계의 대대적인 구조 조정이 이루어지게 되고 사회복지직 공무원 수가 25년 만에 100배 가까이 증가한다. 사회복지직 공무원의 증가는 복지서비스의 변화도 불러 일으켰다. 이전까지는 정부 보조금의 통제 하에 작동되었던 사회복지서비스와는 달리 이때부터는 공급자가 아닌 서비스 이용자를 공급자가 책정하여 이용권(바우처)을 전달하는 방식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바우처 서비스의 등장은 기존 민간부문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정체성 혼란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서비스 이용자들의 사회복지 인식 또한 바뀌는 계기를 마련한다.

탈 사회복지

  사회복지가 사회보장의 늪에 빠져 점점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을 무렵 2007년 제정된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서는 ‘사회복지’라는 단어가 아예 빠지게 된다. 급기야 2012년 개정된 「사회보장기본법」에서는 기존의 사회(복지)서비스를 모두 포괄해 ‘사회서비스’라 하고, 사회복지서비스는 사회서비스의 한 부류로서 단지 ‘복지’ 분야에 대한 서비스로 한정하는 것으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또한 2015년 「사회보장급여법」이 시행되면서 공공전달체계가 다시한번 개편되더니 원래 있던 ‘지역사회복지협의체’를 ‘지역사회보장협의체’로 명칭을 변경하는 결정타를 날린다. 아마도 이는 공공부문의 법제적 변화가 우리나라 전체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에서 ‘탈사회복지’를 불러일으키는 신호탄이 아닐까 싶다. 이런 흐름대로라면 앞으로 ‘사회복지사’도 ‘사회보장사’로 이름이 바뀌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

  사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단지 사회복지의 상실 때문만이 아니다. 사회복지의 가치는 시대적 상황이나 정치적 이념 때문에 그때그때 바뀌는 것이 아닌데 과거 우리의 역사는 그렇지 못했다. 사회복지 법률의 변천사로만 봤을 때는 지금까지 사회복지는 사회보장과 동의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동격의 의미로 구분 없이 쓰였던 것 같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아예 사회복지를 사회서비스의 한 분야로 전락시키고야 말았으니 이를 지켜보는 사회복지사의 입장에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회복지와 사회보장은 당연히 다른 의미다. 사회복지는 제도적 개념으로 국가의 복지정책이 지향하는 목표라고 할 수 있겠고, 사회보장은 국민의 복지 즉, 사회복지를 목표로 실행하는 사회적 안전장치(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복지학개론 책의 첫 페이지만 펼쳐보아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을 지난 수십 년 동안 외면하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가 너무나도 사회복지의 본질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다운 삶과 사회복지

  나는 지난 십 수 년 동안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사람들이 사회복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가만히 지켜봐 왔다. 예나 지금이나 법을 만드는 위정자들은 사회복지를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고, 사회복지 정책을 기획하고 수행하는 공무원들은 과거 관행에 따라 수동적으로만 보인다. 역사를 돌이켜보니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복지 인식은 헌법에서 사회복지가 처음 등장한 1980년에 머물러 있거나 아니면 그 보다 더 이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최근 우리사회는 또 다시 사회복지의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나이가 많건 적건, 장애가 있든 없든,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모두 지역사회 안에서 한데 어울려 사는 그런 행복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의 정책이란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잘 모른다. 사회복지직 공무원이나 사회복지사가 아닌 이상 아예 관심조차 없다.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사회복지정책을 주민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관심이 없다는 것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으로서는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사람들의 인식이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제도와 정책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국가의 모든 정책은 그 시행에 앞서 사람들의 올바른 인식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 사회복지정책 더더욱 그래야 한다. 헌법에서 말한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인간다움에 대한 자기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 참고문헌 : 김영종 (2017). 우리나라 사회복지 전달체계와 담론적 작용. 한국사회복지학

$ 알쓸복잡에서 알려주는 '사회복지'와 '사회보장'

*사회복지(Social welfare)란?
  복지(welfare)는 ‘well(좋은)’과 ‘fare(상태)’의 복합어로서 ‘만족스럽게 잘 지내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안녕(well-being)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자(漢子)에서 ‘복지(福祉)’의 뜻도 마찬가지다. 복‘복(福)’자와 복‘지(祉)’자 모두가 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복이 둘이나 겹쳐 있는 쌍복(?)이니까 굉장히 복이 많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말로 복(福)이란 전통적으로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인데 이 또한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인 안녕을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그렇다면 사회복지는 ‘사회적(social)’이란 형용사와 ‘복지(welfare)’라는 명사가 합쳐져 ‘사회적 복지’정도로 직역하면 될 듯하다. 다시 말해, 사회복지는 인간 생활의 만족스런 이상(理想)상태가 개인의 만족을 넘어서서 사회 구성원 모두의 행복과 안녕의 만족스러운 상태를 의미한다.

*사회보장(Social security)이란?
  영어 ‘security’는 라틴어의 ‘secura’에서 왔는데 ‘se-’는 ‘없는, 해방’의 뜻을 지닌 접두사이고 ‘cura’는 ‘고민, 걱정’의 뜻이다. 합치면 ‘고민과 걱정이 없는’의 뜻이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시큐리티(security)’라고 하면 ‘캡스’, ‘세콤’ 등과 같은 경비업체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이들 경비업체들이 하는 일이 바로 혹시 모를 외부 위험으로부터 우리의 안전과 재산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같은 의미로 ‘Social Security(사회보장)’는 사회적인 위험(social risks)으로부터 사회구성원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사회적 안전장치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위험은 국가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대게 질병, 장애, 노화와 같은 신체적 위험과 실업, 재해, 빈곤 등 경제적 위험을 포함한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사회보장은 국가가 이러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그로 인해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총체적인 국가정책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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