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복잡(알고보면 쓸데없는 사회복지 잡생각)

운동을 시작하는 방법 본문

알쓸복잡

운동을 시작하는 방법

오아시스(沙泉) 2021. 12. 27. 14:06

  미국에서 시작해 세계적으로 알려진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강연회는 각 분야에서 유명한 인사와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초대되어 18분 이내의 짧은 강연을 펼친다. 강연에 초대 받은 사람 중에는 영화배우에서부터 노벨상 수상자, 전직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유명 인사들이 출연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2010년 미국의 인터넷 쇼핑몰 CEO인 데릭 시버스(Derek Sivers)3분짜리 TED 강연이 끝나자 청중들은 모두 기립박수를 쳤다. 이 짧은 강연이 사람들을 어떻게 감동시켰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검색

  데릭 시버스는 '운동을 시작하는 방법(How to start a movement)'이라는 주제로 강연시간 내내 한 편의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동영상에는 많이 사람들이 모인 공원 한가운데서 웃통을 벗은 채 춤을 추는 한 남자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 남자는 사람들의 시선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한동안 계속 춤을 추고 있다. 그것도 웃통을 벗은 채로……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주변에 있던 다른 한 남자가 나타나 그의 춤을 따라 추기 시작한다. 그러다 잠시 후 또 다른 남성이 나타나 춤을 따라 추는가 싶더니 이제는 자신의 친구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한다. 곧바로 3명의 남성이 더 늘어나 사람들이 모이는데 가속도가 붙더니 결국에는 공원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 그 남자의 춤을 따라 추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공원은 마치 축제현장으로 변한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검색

  처음에 사람들은 공원에서 웃통을 벗은 채로 춤을 추는 사람을 보고 미치광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춤을 따라 추는 첫 번째 추종자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첫 번째 추종자는 공공장소의 외로운 미치광이를 리더로 변모시킨다. 그리고 두 번째 추종자가 나타나면서부터 춤을 추는 세 사람은 이제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집단이 함께 추는 춤은 공원 안에서 하나의 뉴스거리가 된다.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하나둘씩 춤을 추는 집단의 주위를 서성이다 스스로 대열에 합류하게 되고, 그전까지는 미치광이의 춤을 방관하고 있던 주변사람들도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고 조금씩 마음이 바뀌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혼자가 아닌 집단이 하는 행동은 더 이상 돋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조롱거리가 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수가 참여하고 있는 집단에 나만 혼자 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조롱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뒤늦게 참여하더라도 새로운 집단을 고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운동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검색

  공원에서 춤을 추는 운동이 성공적으로 끝나게 되면 사람들은 처음 웃통을 벗고 춤을 춘 남자에게 모든 공을 돌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강연을 한 데릭 시버스는 운동을 시작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람은 웃통을 벗고 춤을 춘 사람이 아니라 그의 춤을 따라 춘 첫 번째 추종자라고 말한다. 첫 번째 추종자가 없었더라면 공원에서 웃통을 벗고 춤을 춘 사람은 그저 외로운 미치광이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추종자가 용기를 내어 미치광이 대열에 합류했을 때 춤은 그냥 미친 짓이 아닌 의미가 있는 하나의 행위가 됐다. 데릭 시버스는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가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로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운동을 일으키려고 생각한다면, 따를 수 있는 용기를 가지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를 보여주세요."라고……

  그의 말처럼 현대사회의 리더십은 지나치게 미화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리더십이란 것이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추종자가 있을 때에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마련인데 추종자가 없이 리더만 있는 리더십이 무슨 소용일까 싶다. 현대사회는 모두가 리더가 되고 싶어하고, 자기혼자만 최고이고 싶고, 추종자가 되면 패배한 것이라는 우월주의적 사고가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16년 제주도에서 스마트복지관이라는 건물이 없는 사회복지관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도 사람들은 전례가 없고, 존재해야 할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스마트복지관을 단지 외로운 미치광이(?)로 조롱하거나 아니면 방관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인천시와 파주시가 대열에 합류하면서 스마트복지관은 그냥 미친 짓이 아닌 의미를 가진 하나의 행위가 될 수 있었다. 스마트복지관도 첫 번째, 두 번째 추종자가 나타나면서 하나의 집단이 될 수 있었고 사회복지관 혁신운동도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스마트복지관은 사라졌다. 사람들은 미치광이 짓을 하다 그만 둔 나에게 스마트복지관이 지금은 법적인 근거가 없고 사람들의(여기서 사람이란 지역주민이 아니라 같은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 동료들을 말한다.) 공감을 얻기 어려울 수는 있어도 앞으로 사회복지관의 혁신운동에 있어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었다.”며 애써 나를 위로했다. 다 끝난 마당에 내가 무슨 수상소감이라도 하길 바라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지금에 와 이것 하나만큼은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복지관의 운영혁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마트복지관과 같은 선구자적 리더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아무도 하지 않는 미치광이 짓을 보고 (다른 지자체와는 다르게) 눈치를 살피며 방관하지 않고 용기를 갖고 먼저 뛰어든 첫 번째, 두 번째 추종자들이다. 위로를 하더라도 리더(실제로 리더라기보다는 먼저 실행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추종자가 나타나서 우연히 리더가 된)가 사라지고 추종자만 남은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 먼저다. 어쨌든 인천시와 파주시와 같은 추종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번에 참여할 세 번째, 네 번째 추종자는 스마트복지관과 같은 미치광이 대열에 훨씬 적은 용기를 가지고도 합류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스마트복지관 운동에 가속도가 붙어서 사회적으로도 큰 전환점을 가져오길 기대했었는데 지금은 이마저도 어렵게 됐지만 말이다.

우주에 단 하나의 물체만 있다면 이 물체는 일정한 속도로 운동하거나 정지해 있어야 한다. 물체에 영향을 주는 다른 존재가 하나도 없으니 물체에 작용하는 힘은 당연히 0이다. 정지해 있던 물체는 정지해 있어야 하고, 등속으로 움직이던 물체는 계속 같은 속도로 운동해야하기 때문이다. (중략) 하나의 물체는 홀로 힘을 만들 수 없다. 이 물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등속직선운동뿐이다. 그 물체가 사과이건 고양이건 아인슈타인이건 사정은 같다. 두 번째 물체가 존재할 때 비로소 첫 번째 물체의 단조로운 운동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세 번째 물체가 나타나면 세상은 이미 혼돈으로 가득해지고 운동은 복잡함으로 충만해진다. - <김상욱의 과학공부>중에서


  뉴턴의 운동 제
1법칙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다 안다는 관성의 법칙이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의 말처럼 이 세상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스스로 운동할 수 있는 물체는 없다. 물론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운동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운동과는 다르다. 하지만 데릭 시버스의 강연에서 나오는 동영상에서의 운동과 물리학의 운동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변화의 리더십에는 추종자가 필요하고, 그 다음에 나타나는 새로운 추종자들은 리더가 아닌 그 이후의 추종자들을 따라하게 된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필요한 리더십의 시작은 아마도 혁신적인 이상과 높은 신념으로 변화를 이끄는 자들이 아니라 그 변화의 시작에 용기를 내어 대열에 합류하는 추종자들이 아닐까 싶다. 데릭 시버스의 강연은 이렇게 마무리 된다. 혼자서 외로이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주저하지 말고 합류하는 두 번째 사람이 되어라. 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당신이 첫 번째 사람을 그냥 무시해버리면 그 사람은 바보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함께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운동이 된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