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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도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오아시스(沙泉) 2021. 12. 30. 13:31
사회복지사 커플이 결혼하면 수급자를 면치 못한다.

  사회복지사들끼리 모이면 심심찮게 하는 웃픈(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야기다. 그만큼 사회복지사들이 월급을 적게 받고 있다고 너스레를 떠는 말이지만, 실제로 사회복지사 커플인 나는 별로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매년 반복되듯 사회복지사를 대표하는 회장님의 신년사에 어김없이 처우개선을 약속하는 내용이 실린다. 지금까지 몇 대에 걸쳐 처우개선을 약속하셨으면 이제는 개선됐을 법도 한데 매번 회장님이 새로 오실 때마다 처우개선을 약속하시니 정말 처우개선이 안 된 건지, 아니면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닌 건지, 과연 어느 정도면 만족할 만한 수준인 건지……. 사회복지사 처우개선의 끝은 보이지 않고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현실은 끝을 알 수 없는 안개 속이지만 그래도 매년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시니 그저 고맙다고 해야 할까.

  사실 사회복지사 처우개선 움직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11230[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이듬해 11월부터 곧바로 시행됨에 따라 처우개선 운동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 그 이후로 국가의 사회복지예산도 매년 꾸준히 증가해서 전체 예산의 1/3을 넘겨 매년 최고 수준을 갱신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사회복지예산은 더욱더 눈덩이 커지듯 커졌다. 국가의 1년 살림살이 중에서 사회복지 예산 비중이 커졌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복지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사회복지사로서는 별로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사회복지 예산이 늘어난 만큼 사회복지사가 해야 할 업무만 늘어났지, 주머니 사정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명 사회복지사법이라고 일컫는 법이 시행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게 흘렀다. 그런데도 아직 사회복지사들이 아우성치는 것은 어딘가 분명 문제가 있긴 한가 보다. 우선 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회복지사법 제3조의 내용은 이렇다. 「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를 개선하고 복지를 증진함과 아울러 그 지위 향상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회복지사 등의 보수가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의 보수 수준에 도달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국가는 사회복지사 등의 적정 인건비에 관한 기준을 마련하여야 하며, 지방자치단체는 해당 기준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신설 2018. 12. 11.>…… 내용을 보고 나니 지금까지 왜 사회복지사의 처우개선 노력이 끝없이 이어져 왔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 중에 노력에는 끝이 없다고 하신 말씀이 이렇게 적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법을 만들었으면 지키는 것이 당연하지, 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멈춰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 멈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긴 나도 빨간불이 들어와도 멈추지 않고 몰래(?) 지나가는 때도 있긴 한데, 그 이유는 내가 법을 지키지 않아도 경찰에게 걸리지 않고 사고만 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가 교통법규를 사소하고, 업신여겨 벌어진 일이다. 마찬가지로 사회복지사법을 만든 사람이나 지켜야 할 사람들이(이 법에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쯤 되겠다) 법을 지키지는 않고, 노력하는 척(?)만 하면서 법을 업신여기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정부와 사회복지 분야에서 앞장서고 계신 분들이 사회복지사의 처우개선을 위해 큰 노력을 해왔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성과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법에 명문화된 것처럼 요양보호사와 같은 사회복지사 등에 대한 처우(보수)는 눈에 띄게 개선됐다. 나처럼 사회복지사에 대한 처우는 별로 나아진 것이 없지만 그나마 사회복지사 등(!) 사회복지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처우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니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나는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다. 지금껏 사회복지사들이 한목소리로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사회복지사가 너무 돈만 밝히는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이다. 처우는 반드시 보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데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사회복지사들이나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너무 한 쪽 방향으로 치우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처우(處遇)’라는 말도 급여나 보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용주 관점에서 직원에 대한 대우(treatment)’ 정도로 애써 제한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고용주가 아니라 노동자들인데 하나같이 고용주의 관점에서 노동자의 탈을 쓰고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꼴이 같은 노동자로서 자괴감이 들게 한다. 노동자 관점에서 처우란 근로조건(labor conditions)’을 의미한다. 근로조건이라고 함은 보수를 포함한 노동시간, 업무환경, 교육과 후생 관련 제도, 노동자가 근무하는 시설환경을 총칭한다. 지금까지 사회복지사 등에 대한 대우(보수)는 많이 좋아졌다고들 말하지만, 사회복지사 등(?)이 일하는 근로조건이 나아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별로 만나 본 적이 없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정치인들 또는 정치를 하고 싶은 사회복지사들, 또는 사회복지사가 아닌데 사회복지사 행세를 하는 사람들)은 당장 효과를 나타내는 법을 만들어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처우개선을 부르짖는 사회복지사들을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잠재울 방법이 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처우개선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들도 문제다. 법을 만드는 사람이든, 정책을 시행하는 사람이든, 앞에 나서서 사회복지사를 대변하는 사람이든, 이 모든 사람이 급여만 높여 준다고 해서 처우가 개선될 것으로 생각했다면 그건 아주 큰 판단 착오다. 질 높은 삶이란 사회적 지위나 관계, 여가와 문화생활이 공존하는 삶이라는 것을 그분들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사회복지사의 처우는 보수뿐만이 아니라 근로환경도 함께 개선되어야 제대로 된 처우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문가다운 업무의 자율성까지 보장해 준다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을 것이다.


  그동안 사회복지사의 근로환경 개선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제주도에서 시작된 스마트복지관이다. 항간에는 스마트복지관을 기존 복지전달체계를 부정하고 사회복지관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은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다. 스마트복지관은 사회복지사의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공간의 혁신이 전부였다. 스마트복지관은 지금까지 사회복지관의 전형적인 운영방식에서 벗어나 청사 건물 없이 사회복지사들이 자유롭게 지역사회로 나가 복지사업을 추진하는 새로운 플랫폼(platform)을 의미했다. 스마트복지관이 사회복지전달체계를 무슨 수로 개선할 수 있었겠나. 단지 스마트워크를 기반으로 근무환경을 개선해보자고 시작했던 일인데 다른 사람도 아닌 사회복지사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나는 그저 제주도의 스마트복지관이 본보기가 되어서 대한민국 사회복지사들의 업무환경을 변화시키고 처우가 개선되길 바랐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거기에다 정치적인 의도를 덧씌우면 마귀가 되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 현실이다. 내가 사회복지를 했으면 했지, 정치를 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 격이다. 직장생활에서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가장 버려야 할 생각 중에 하나지만, 사회복지사 처우개선을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나온 상황에서 미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주어진 사실은 아직 진실이 아니다라는 한 언론인의 말을 떠올려 본다. 우리는 주어진 사실을 너무나 쉽게 믿고 쉽게 판단하며 살아간다. 주어진 사실 너머에는 진실이 있다. 지금까지 사회복지사 처우개선 노력이 보수 수준의 개선이었다면 이제부터라도 사회복지사 처우, 다시 말해 사회복지사의 근로조건(social worker conditions)의 개선을 위해 노력할 때라고 본다. 사회복지사도 빵만으로 살 수 없다.

 


* 이 글은 <사회복지사가 꿈꾸는 사회복지(황소걸음, 2021)>의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