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복잡(알고보면 쓸데없는 사회복지 잡생각)

사회복지 사업이란 무엇인가?(feat. 사회복지사) 본문

알쓸복잡

사회복지 사업이란 무엇인가?(feat. 사회복지사)

오아시스(沙泉) 2021. 12. 30. 13:21
당신들이 하는 사업은 무엇입니까?
1989년 피터 드러커는 자신을 만나러 온 서비스용역회사의 사장과 직원들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직원들은 각각 자신들이 맡은 사업부가 하는 일을 중심으로 대답을 했다. “주택 청소입니다.”, “해충박멸이지요.”, “잔디관리요”…… 대답을 들은 피터 드러커는 날카롭게 잘라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모두 틀렸소. 여러분들은 자신의 회사가 하는 사업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소. 여러분들의 회사가 하는 사업은 아주 미숙련의 사람들을 훈련하고 그들이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오.”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1909-2005)는 기업의 리더들에게 곤란한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었다. 그래서 피터 드러커는 원래 직업이 컨설턴트(consultant)이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설턴트(insultant, ‘insult’모욕하다라는 뜻)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앞서 일화에서도 보았듯이 갑자기 던진 그의 질문에 애써 찾아온 기업 임직원들의 당황한 얼굴이 짐작이 간다. 그리고 그 질문은 나에게도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는 아니지만, 사업이라고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사업을 많이 하는 사회복지사(social worker, 사회사업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사회복지사가 하는 사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과연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오랜만에 책장에 꽂힌 피터 드러커의 책을 읽다가 잠시 책을 덮고 사색에 잠긴다.


  “우리 회사가 수행하는 사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은 직장인이라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철 회사는 철강을 생산하고, 철도회사는 승객과 화물을 수송하고, 손해보험회사는 고객으로부터 보험을 인수하는 것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복지관을 찾아오는 수많은 사회복지사에게 피터 드러커와 비슷한 질문을 자주 던진다. “선생님께서 하는 사업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사례관리 담당입니다.”, “주민조직사업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업 담당은 아니고 회계업무하고 있습니다.” 등등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이렇게 대답한다. 이는 사회복지사라면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피터 드러커는 사회복지사들의 이 같은 대답에 보나 마나 날카롭게 잘라 이렇게 말했을 것만 같다. “사회복지사, 당신들은 모두 틀렸소!”라고.

  피터 드러커는 우리가 하는 사업은 무엇인가?’의 질문은 항상 깊이 생각하고 또 연구한 후에야 대답할 수 있는 매우 어려운 질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보통의 경영학자와 달리 가치에 기반을 둔 학자였다. 가치는 피터 드러커가 리더들에게 질문을 할 때 가장 중요시한 요소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사업에 대한 인식도 개인이나 회사의 가치 기준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했다. 사회복지사업에서의 가치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어떤 기업에서의 사업 가치보다 중요한 요소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사회복지 사업에 대한 인식도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사업을 직접 수행하는 사회복지사 스스로 가치는 무엇일까? 미국사회복지사협회(NASW)의 윤리강령(Code of Ethics) 전문을 보면 사회복지사의 사명은 일련의 핵심 가치(core values)에 근원이 있고, 이 핵심 가치가 사회복지실천의 기초가 된다.’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일련의 핵심 가치는 서비스(service), 사회정의(social justice),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존중(dignity and worth of the person), 인간관계의 중요성(importance of human relationships), 성실(integrity), 전문성(competence) 6가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핵심 가치는 사회복지사만의 전문성을 반영하고, 핵심 가치로부터 나오는 원칙은 인간 삶의 복잡성(complexity)과 관계상황(context) 안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윤리강령이다 보니 나 역시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사회복지사의 가치를 먼저 인식하고 나서 피터 드러커가 던진 질문을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그의 말처럼 많은 고민이 되고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았다. 이는 그동안 내가 과연 가치를 바탕에 두고 사회복지사업을 수행하였던 가에 대한 반문일지도 모른다. 피터 드러커가 던진 이 짧은 질문이 10년이 넘는 사회복지사의 삶에서 이렇게 큰 난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과 해답을 찾고 싶은 설렘을 안고 남은 책장을 넘기게 된다.


  피터 드러커가 가끔 독설가로 불리기도 했지만 역시 본업인 컨설턴트답게 정답을 주기보다는 내담자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늘 그랬듯이 차분하게 방향을 제시한다. 기업으로서 우리가 하는 사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은 생산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다시 말해 이런 질문의 해답은 오직 사업을 외부에서 들여다볼 때, 즉 고객과 시장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만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피터 드러커의 말에서 경영자사회복지사로 바꿔 말하면 이해하기가 쉽겠다. ,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가 보는 것, 생각하는 것, 믿는 것, 원하는 것을 검토할 가치가 있는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추측하려 하기보다는 그들로부터 직접 진솔한 대답을 구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나는 피터 드러커의 대답이 반전이었다. 지난날 나 자신에게서만 답을 찾으려고 했던 나를 스스로 반성하게 했다. 글을 쓰는 내내, 마치 피터 드러커가 직접 내 귀에 대고 계속 속삭이는 것만 같다. ‘당신이 하는 사업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보통 사업을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 비유한다. 실제로 배가 항해를 할 때는 맑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폭풍을 만나 높은 파도를 만날 때는 수 마일이나 항로를 벗어날 경우도 생긴다. 짙은 안개 속에서는 배가 천천히 나아갈 것이고 어쩌다 태풍이라도 만나게 되면 아예 전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악천후 속에서도 배가 목적지를 잃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나침반이다. 가치는 우리의 사업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다. 나침반이 고장 나거나 잃어버린 배는 목적지를 제대로 찾아갈 수 없다. 사회복지의 배를 탄 사회복지사도 마찬가지다. 사회복지사는 자신과 조직의 공통된 가치를 미리 깨닫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사회복지사가 추구하는 목적지가 정확히 어디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사회복지의 가치를 잃지 않는 것이다. 그동안 사회복지사의 삶을 살면서 비록 먼 길을 돌아온 것 같지만 결국 나는 사회복지 나침반이 가리키는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 이 글은 <사회복지사가 꿈꾸는 사회복지(황소걸음, 2021)>의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