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복잡(알고보면 쓸데없는 사회복지 잡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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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정의인가? 자선인가?

오아시스(沙泉) 2021. 12. 30. 13:15
참 좋은 일 하시네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를 사회복지사라고 소개하면 열 명이면 열 명 모두에게서 항상 듣는 말이다. 좋은 일을 한다는데 들어서 기분 나쁜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썩 내키는 말도 아니다. 세상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 중에 강도나 사기꾼이 아닌 이상 나쁜 일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우리 동네 미용실 원장님도 좋은 일을 하시는 분이긴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한번은 내가 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회복지사는 남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10년이 넘도록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남을 위해 봉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도 그저 평범한 월급쟁이에 불과한데 사람들은 왜 사회복지사가 봉사하는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원래 봉사(奉仕)라는 말은 남을 위해 자신은 돌보지 않고 희생한다는 의미인데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그런 직업인이 됐는지 괜히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먼저 법()에서는 사회복지사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한번 찾아봤다. 소위 사회복지사법이라고 불리는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에서는 사회복지사를 사회복지사업을 행할 목적으로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또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사회복지사업에 종사하는 자를 사회복지사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냥 사회복지사면 사회복지사지 하필이면 사회복지사 등으로 규정하고 있으니 왠지 뒤끝이 깔끔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법에는 또 어떨지 더 찾아봤다. 사회복지사업법 제11조 제1(사회복지사 자격증의 발급 등)의 규정에는 사회복지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에게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발급할 수 있다.라고 되어있다. 대한민국 법률 어디에도 사회복지사를 깔끔하게 정의하고 있는 법은 없었다. 뭔가 2%씩 부족한 느낌이다. 개그콘서트의 유행어처럼 이거 참 씁쓸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법에서 사회복지사를 봉사하는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케케묵은 법률만 뒤진다고 해서 사회복지사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깨기에는 왠지 속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할 것만 같다.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 사회복지사()에 관한 법률도 존재하고 사회복지사의 자격을 규정하는 법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사회복지사를 봉사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증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차라리 복지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왜 하필 봉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괜히 속상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평소에 사람들은 사회복지에 대해 잘못된 인식이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사회복지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봉사) 정도로 생각하면, 사회복지사를 자원봉사자로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보통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해지면 사회복지를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로 생각한다. 사회복지를 그저 배고프고 돈 없는 사람들에게 주는 국가와 사회의 자혜로운 선행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가 어느 정도 일정 수준의 보충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은 사회복지사로서 부인하기 어렵긴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사회복지는 점점 보편적인 정의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사회복지를 사회복지사가(또는 자원봉사자가) 하는 자선활동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혹시 사람들은 자선(慈善)과 정의(正義)를 서로 혼동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실 사회복지사인 나조차도 사회복지가 자선인지 정의인지는 똑 부러지게 말을 못 하겠는데 일반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 그래서 나도 이참에 오랜 시간 해결하지 못한 자선정의에 대해 한번 알아보고 싶었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했던가. 사회복지사에게는 평생 숙제일 것만 같던 이 난제에 대한 해답을 우연히 서재 책장에 꽂힌 오래된 고전에서 찾을 수 있었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로 펼치기조차 민망한 그 책 제목은 바로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이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손’, ‘국부론의 저자’, ‘경제학의 아버지로 더 잘 알려진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9-1790)는 자신의 묘비 문구를 도덕 감정론의 저자로 써지길 원할 정도로 경제학자 이전에 도덕 철학자였다. 애덤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도덕 감정론에서 사회질서의 기초를 구성하는 도덕 원리는 감정에 근거한다고 했다. 그리고 사회질서는 두 종류의 일반적 규칙(general rules)으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바로 자선정의라고 했다. 애덤 스미스는 자선(beneficence)을 그것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할 수는 있어도 딱히 사회에 해를 끼치지는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의(justice)는 그것을 하지 않으면 사회에 해를 끼치기 때문에 강제적일 지라도 해야 하는 것이라고 봤다. 다시 말해서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자선은 부가적이고 정의는 의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애덤 스미스는 완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규칙이 반드시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덤 스미스의 사상에 빗대어 사회복지를 다시 생각해본다. 사회복지를 애덤 스미스가 말한 자선의 시선으로 보면 사회복지사의 활동이 좋은 일이 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것(사회복지)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에 사회복지를 정의의 시선으로 보면 어떨까? 사회복지사의 활동(사회복지)은 반드시 해야 할 의무이어야 하고 그것을 하지 않았을 때는 사회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이렇듯 사회복지를 자선으로 보느냐, 정의로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필요성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하는 사회복지는 과연 자선일까? 정의일까? 현재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사회복지예산(보건 포함)은 전체 예산의 30%에 육박하는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이제 우리 사회에서 사회복지는 자선을 넘어 제도적으로 정착된 사회정의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애덤 스미스의 말처럼 정의는 마땅히 행해져야 하고 이를 위반했을 때는 강제적으로라도 지켜야 할 사회질서이자 규칙이기 때문에 사회복지도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그리고 해야만 하는 중요한 사회적 요소가 됐다. 따라서 사회복지사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의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공적으로 수행하는 전문가로 인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사회복지 현장에서 활동하다 보면 사람들이 가끔 사회복지를 자선과 정의를 혼동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사회복지서비스를 받는 대상자가 사회복지를 당연한 권리와 사회적 의무로만 생각하는 바람에 애써 찾아온 사회복지사를 윽박지르거나 하대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복지사(또는 공무원)가 사회복지를 자선으로만 생각한 나머지 서비스를 받는 대상자에서 권위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대상자를 낙인찍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에서 자선은 감사하는 감정에서, 정의는 분노의 감정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래서 자선과 정의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만 완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사회복지는 사회를 이루는 하나의 사회적 정의이기도 하고, 사회적 미덕(美德)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회복지는 자선과 정의, 그 사이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도, 그리고 사회복지도 자선과 정의가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완전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250년 전 애덤 스미스가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 이 글은 <사회복지사가 꿈꾸는 사회복지(황소걸음, 2021)>의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