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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보수교육의 추억

오아시스(沙泉) 2021. 12. 30. 13:27

  요즘에는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연말연시 분위기가 잘 나지 않지만 해마다 연말연시에는 삼삼오오 거리로 나와 연말을 즐겼었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과거의 일들이 추억이 되어 간다니 좀 슬프기도 하다. 그런데 나 같은 사회복지사들은 연말의 분위기를 즐기기는커녕 이곳저곳에서 들어오는 후원과 기부 덕분에 평소보다 좀 더 바빠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또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일이 1년 단위로 진행되기 때문에 연말에는 한 해 동안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정리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이 없다. 안 그래도 바쁜 연말인데 한 가지 밀린 숙제도 남았다. 사회복지사들은 1년에 한 번씩 반드시 보수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보통의 사회복지사들은 미루고 미루다 결국 연말까지 가지고 온다. 누군가 그러던데 보수교육을 받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사회복지사 중에 과태료를 어디로 얼마를 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결국 한 해가 다 끝날 때가 돼서야 부랴부랴 인터넷을 열어 남은 보수교육이 있는지 검색해 본다. 아니나 다를까 보수교육은 이미 마감돼 버렸다. 과태료를 내지 않으려면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가서 보수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런 낭패가 또 없다. 진작 미리미리 받아둘 걸……. 그렇게 매년 하는 후회를 어김없이 반복하고야 만다.


  나에게 보수교육은 그렇게 뭉그적거리다가 연말이 돼서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억지로 마지못해 가고야 마는 그런 교육이다. 하지만 내 게으른 핑계와는 달리 사회복지사 보수교육은 사회복지사업법13조 제2항에 따라 진행되는 엄연한 법정 교육이다. 사회복지법인이나 시설에 종사하는 사회복지사(5, 40시간 이상 근로자)라면 1년에 8시간씩 의무적으로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나처럼 뭉그적거리다 혹시라도 보수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면 사회복지사 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태료 20만 원을 내야 하는 어마어마한 교육이다. 지금까지 과태료를 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지만 나는 그놈의 20만 원이 무서워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보수교육을 받아왔다.


  사회복지사는 전문가니까 국가가 정한 절차를 통해 획득한 전문자격을 지속해서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해 보수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복지사협회(사회복지사 자격을 관리하는 기관, 이하 한사협)는 보수교육을 다양한 사회적 욕구와 문제에 시의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 사회복지사의 직무능력 유지 및 향상을 도모하고, 나아가 수준 높은 서비스 제공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라고 했다. WHO(세계보건기구, 2005)에서도 보수교육은 최근 정보를 갖고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하고 종사자 측면에서 자신들이 전문직으로서의 경력과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라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사회복지사협회(NASW)사회복지사들은 보수교육에 지속해서 참여함으로써 서비스 제공에서 숙련도를 유지하거나 향상하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기술이 정교화되고, 또 전문적 태도가 강화되며, 더 나아가 사회복지사 개인의 삶이 변화한다.”라고 했다. 이 정도만 보더라도 사회복지사에게 보수교육의 필요성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인정할 만큼 매우 중요한 교육임이 분명해 보인다. 사회복지사들이 그렇게 뭉그적거리며 도살장에 끌려가듯 받아야 하는 그런 교육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도 정작 나는 1년에 한 번 보수교육을 받기가 이다지도 힘든 것은 사회복지사로서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

  내가 보수교육을 자꾸 뒤로 미루는 이유는 아무래도 스스로 게으른 탓이 가장 크겠지만 보수교육이 내키지 않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이 또한 핑계일 수 있겠지만 솔직히 보수교육이 재미가 없다. 교육을 무슨 재미로 듣느냐고 핀잔을 줄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생각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은 막상 보수교육을 받으러 가서 교육장의 분위기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원래 보수교육이란 것이 동종업계(?)의 사람들끼리 모여 대충 알만한 내용을 다시 듣는 것이다 보니 특별한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교육하는 강사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마주쳤을 법한 어느 시설장이 와서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놓는데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 강의 커리큘럼도 경력(직급)이나 직무에 상관없이 윤리와 가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딱히 실무적인 내용이 없고 식상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보수교육을 받고 싶어 괜찮은 교육내용을 고르고 골라보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연말까지 내몰리는 일이 반복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그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교육의 내용 따위는 안중에 없고 빈자리가 남아있는 교육이면 아무거나 들어야 할 판이다.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나 같은 처지에 있는 사회복지사들이 힘을 합쳐 협회에 집단으로 요구(거의 항의 수준)를 하면 교육이 추가로 개설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지금까지 내가 받아왔던 사회복지사 보수교육을 추억해 본다. 연말에 마지막 보수교육이 있는 날은 항상 강의실이 북적인다. 막차를 잡아탄 이유야 모두 제각각이겠지만 이렇게 바쁜 연말에 일과를 제치고 종일 강의실에 감금(?)되어 있어야 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심정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평소보다는 서둘러 30분이나 먼저 교육장에 도착했건만 명당자리(맨 뒷자리 또는 구석 자리)는 이미 나보다 더 지독한 사람들이 차지했다. 그나마 나도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맨 앞자리만큼은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마지막 보수교육을 자발적으로 왔을 리 없는 사람들이, 그것도 100명 가까이 되는 사회복지사들이 좁은 교육장에 모여 앉아 있으면 면학 분위기가 좋을 리 없다. 강의 도중에도 전화를 받으러 들락날락하는 것은 더는 남의 일이 아니다. 보나 마나 사무실에서 걸려온 전화 아니면 다른 기관에서 걸려온 전화일 것이 분명할 것이기 때문에 측은한 마음으로 모른 척하는 것이 암묵적인 예의다. 혹시라도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될 것에 대비해 보조배터리를 챙겨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요즘에는 아예 교육장에 보조배터리 비치해 두거나 충전기를 설치해 놓은 교육장도 있어서 사회복지사들끼리의 동병상련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교육이라도 도시락까지 먹어가며 온종일 교육을 듣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오후 강의부터는 몰려오는 졸음에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많은 사람이 핸드폰으로 딴짓(?)을 하는 것도 다 졸음을 쫓기 위한 것이라 믿고 있다. 눈치 빠른 강사가 잠시 교육을 멈추고 단체 스트레칭을 시킨다. 다들 잘 따라 한다. 성격이 활발한 강사는 한 걸음 더 나가서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초면인데 서로의 어깨를 주물러주라며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연출하는 것은 앞으로 다시는 안 해도 좋을 듯하다. 반강제적으로 스트레칭까지 했지만, 효과는 그때뿐이다. 교육이 막바지로 갈수록 집중도는 점점 더 떨어진다. 그래도 보수교육의 최종목표인 출석부에 사인을 세 번(시작할 때, 점심때, 끝날 때) 해야 목표를 달성하기 때문에 끝까지 버티고 또 버틴다. 그렇게 대망의 세 번째 사인을 마치고 교육장을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무언가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보다는 올해도 보수교육을 끝냈다는 홀가분한 기분만이 남는다.


  사회복지사 보수교육이 시행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사회복지사 보수교육 법안이 통과되던 2007년 당시만 해도 다른 전문가단체가 없애려는 보수교육을 왜 굳이 하려고 하느냐는 질타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국사회복지사협회에서는 윤리강령과 법정 보수교육의 여부가 전문가를 구분하는 기준이라고 굳게 믿고 지금까지 보수교육을 통해 사회복지사의 전문가적 위상을 발전시켜 왔다고 한다. 대한민국 사회복지사를 대표하고 보수교육을 주관하는 기관으로써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겠거니 생각하면서도, 그래서 내가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보수교육을 잘 받아서 얼마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지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회복지사의 전문가적 위상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보수교육의 통계를 보면 한 가지 원인은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에 사회복지사 수는 해마다 증가하여 20171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법적으로 보수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사회복지사는 5만 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사실이다. 그나마도 1만 명 정도는 교육을 받지 않고 있다. 그동안 나는 사회복지사의 5%도 받지 않는 교육을 그다지도 꾸역꾸역 받아 왔다. 우리 협회(한사협) 회장님께서는 보수교육에는 문제가 없고 과제만 있을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복지사 보수교육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우선 사회복지사 중에서도 보수교육의 대상을 따로 정해 놓았다는 것이 문제다. 사회복지 공무원은 또 보수교육을 안 받아도 된다는 것도 웃긴 일이다. 보수교육을 받아야 하는 사회복지사(의무대상)와 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복지사(희망 대상)를 따로 정해 놓은 일은 과연 누가 한 짓인가 궁금하다. 사회복지사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보수교육이라고 못 박으면 될 것을 무슨 이유로 주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보수교육을 주관하는 한사협은 우리나라에 사회복지사가 누구인지부터 명확히 정의해야 하겠다. 우리나라 사회복지사를 자격증을 가진 100만 명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보수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5만 명인지, 그것도 아니면 꼬박꼬박 회비를 내는 (그들이 말하는 진성(?) 사회복지사고 말하는) 3만 명인지 그것부터 명확히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집단의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할 때만 100만 사회복지사라고 외칠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사회복지사 자신도 현재의 보수교육 체계에서 자신이 의무교육 대상인지 아닌지도 잘 모른다는 것도 문제다. 나는 어쩌다 보수교육을 한 해 건너뛴 적이 있었는데, 자수해서 광명을 찾으려고 자발적으로 과태료를 내는 방법을 물어보다가 우연히 내가 보수교육 의무대상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동안 나는 뭐 하려고 안 받아도 그만인 보수교육을 그다지도 열심히 받아왔는지 한심하다.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보수교육을 통해 사회복지사의 전문가적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했으면 좋겠다. 보수교육을 통해 사회복지사의 위상을 높일 게 아니라 반대로 사회복지사 스스로 자신의 위상부터 찾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나도 언젠가 사회복지사 의무교육 대상자(?)가 돼서 자긍심을 갖고 떳떳하게 한번 보수교육을 받아보고 싶다.


* 이 글은 <사회복지사가 꿈꾸는 사회복지(황소걸음, 2021)>의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