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복잡(알고보면 쓸데없는 사회복지 잡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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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와 인센티브 경제학

오아시스(沙泉) 2022. 2. 6. 03:55
"눈 오면 열심히 치우세요!"

  지난해 12월 초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 학생이 쓴 조롱 섞인 위문편지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편지에는 “군 생활 힘드신가요? 그래도 열심히 사세요.”, “추운데 눈 오면 열심히 치우세요.” 등 군 장병을 비하하는 듯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편지의 내용이 어딜 봐서 군인을 비하하는 내용인지는 아마 군대에서 눈 좀 치워 본 나 같은 예비역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공책을 반 찢은 듯 종이에 마구 휘갈긴 글씨에 잘못 쓴 글을 수정도 하지 않은 채 가로줄로 죽죽 그은 편지지의 형태만 봐도 정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 티가 분명하게 보였다. 철없이 쓴 편지 한 통이 온라인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면서 위문편지를 보낸 학교와 여고생을 향한 지탄이 이어졌다. 그러나 뒤늦게 학생들이 쓴 위문편지가 학교의 강요에 의해 작성됐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여고에서 강요하는 위문편지를 금지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오는 등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결국 다급해진 관할지역 교육감이 직접 나서서 국군 장병과 해당 학교 학생들에게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논란이 일단락되긴 했다.

  나도 벌써 오래 전 일이지만 군대 있을 적에 부대근처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보내 준 위문편지를 받아 본 적이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군인 아저씨에게 보낸 편지에 진심어린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이라곤 기대하진 않았지만 글씨는 삐뚤삐뚤해도 나름 성의는 느껴졌었다. 사실 이번 일만 해도 학교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썼다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무성의하게 편지를 쓴 여고생의 행동은 철이 없긴 했다. 또 그렇다고 아직 나이 어린 학생의 실수를 잘 타이르고 감싸주지는 못하고 무자비하게 신상을 털어 공개적으로 무안을 준 어른들의 행동도 철이 없긴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제 강점기의 잔재이기도 하고, 군사 독재시절 남자 군인들을 위문한답시고 여학생들에게 위문편지를 강요하는 미개한 관행은 사라지길 바랄뿐이다.


  나는 이번 일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사회복지사의 관점에서 한 가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언론에는 여고생이 쓴 위문편지에서 군인들을 조롱한 내용만 집중적으로 보도를 하긴 했지만, 학교의 강요에 의해 편지를 썼다는 학생들의 주장대로 편지에는 이런 내용도 적혀 있었다. “고3이라 죽겠는데 이딴 행사(나) 참여하고 있으니까”....... 사실을 알고 보니 학생들은 위문편지를 쓰는 일이 봉사활동 점수와 연계돼 있어 어쩔 수 없이 썼던 것이었다. 나는 학생들의 주장이 낯설지 않았다. 나도 사회복지 일을 하면서 이런 비슷한 일들을 많이 겪어 봤기 때문이다. 요즘도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복지관에 근무할 때만 해도 학교생활 중에 자신에게 할당된 봉사시간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하기 싫은 봉사활동을 시켜달라며 복지관으로 여러 번 전화가 왔었다. 그것도 학생이 아닌 학부모가 전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씁쓸한 일이다. 자원봉사를 대충 시간 때우기 식으로 생각하는 것도 사회복지사로서 자존심 상할 일이기도 하지만, 부모가 자식의 봉사시간을 걱정해서 대신 수소문을 하는 것을 보면 그들 자식들은 커서 어떤 사람이 될지 남의 자식이지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식들은 공부하느라 바쁘니까 자신이 대신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부모도 있었다. 자원봉사는 말 그대로 스스로 원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봉사인데, 어쩌다 교육정책이 또는 이 사회가 대가가 없으면 행동하지 않는 각박한 세상이 되었을까?

일상생활에 시장논리의 잠식

  최근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는 도덕적(비시장적) 규범이 지배했던 일상적인 삶의 영역에 까지 시장 지향적 사고가 확대되고 있다. 요즘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이 단순히 물적 재화의 생산과 소비를 파악하는 통찰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인간행동을 설명하는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경제학의 중심에는 단순하지만 포괄적인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사람은 눈앞에 놓인 선택사항에 대해 비용과 이익을 저울질하고 자신에게 최대의 행복이나 효용을 안겨 주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한다’고 가정함으로써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이러한 최근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든 가격을 매길 수 있다는 말이다. 자동차나 삼겹살 가격은 물론이거니와 결혼, 교육, 범죄, 차별 심지어 인간생명에까지 가격을 매길 수 있다는 암시적이 표현이다. 참으로 문송한(?) 사회복지사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긴 하지만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가만히 둘러보면 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시장경제의 잠식은 우리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영역에서도 지난 수십 년 동안 서서히 진행되어왔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사회복지사들은 사회복지(학)보다 경제학이나 경영학 쪽을 더 동경하고 있는 것 같다. 왠지 사회복지를 설명하면서 경제학적 용어를 섞어서 말하면 좀 더 유식해보일 것 같은 환상 말이다. 나는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또 사회복지사 일을 수년 동안 해오면서 사회복지가 경제학에서 말하는 시장개념에 맞추어 놀라울 정도로 수정되어왔음을 목격해왔다. 이러한 변화가 생겨난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에서 금전적(또는 이와 유사한) 인센티브의 사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센티브(incentive)라는 용어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 시절 <국부론>과 같은 경제학 고전에 나오는 말이 아니라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등장한 말이다. 현대 경제학에서 인센티브에 대한 논의는 워낙 널리 퍼져 있어서 급기야 독자적으로 규정된 영역을 갖기에 이르렀다. 경제학에서 인센티브를 학문의 한 영역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만큼 인센티브와 같은 시장개념의 경제학이 우리의 일상생활까지 넓게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센티브는 원래부터 있었거나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경제학자나 정책 입안자가 고안하고 만들어내고 세상에 부여한 제도다. 인센티브는 사람들이 더욱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금연을 하게 만들 수도 있고, 환경오염을 자제하는 데 더욱 분발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더군다나 마음에도 없는 위문편지를 쓰게 할 수도 있다. 이 정도쯤 되면 인센티브로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만 같다.


인센티브와 사회복지

  사회복지가 아무리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산물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전부 경제학적 시장논리로 설명하긴 어렵다. 경제학의 중심 원리 중 하나는 가격 효과다. 가격이 올라가면 사람들은 재화 구입량을 줄이고, 가격이 내려가면 재화 구입량을 늘린다. 이러한 원칙은 일반적으로 주식 시장을 설명할 때에는 신뢰할 만하다. 하지만 사회복지(서비스)처럼 비시장(또는 도덕적) 규범의 지배를 받는 사회적 관행에 가격 효과 원칙이 적용될 때에는 그 신뢰성이 떨어진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한 어린이집에서 부모들이 아이를 늦게 찾으러 오는 경우가 많아지자 늦게 오는 시간만큼 벌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벌금을 부과하면 지각하는 부모들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부모들은 반대로 이전보다 어린이집에 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이러한 결과는 일반적인 가격 효과를 거스른다. 아이를 늦게 찾으러 오는 행위에 가격을 매기니까 규범이 바뀐 것이다. 예전에는 제 시간에 어린이집에 도착하는 것이 교사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한 도덕적 의무로 여겼지만, 이제는 부모들이 이를 시장논리로 이해해서 어린이집에 늦게 도착해도 아이를 좀 더 오랫동안 맡길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교사에게 지불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센티브의 의도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이러한 예는 그나마 도덕적 규범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복지 영역에 일반적인 시장논리가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사회복지와 경제학을 완전히 분리시켜야 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경제학 원리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려면 어떤 행위에 가격을 매기는 것이 도덕적 규범을 밀어내는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아이를 늦게 찾으러 오는 부모의 행동에 가격을 매기는 것이 부모가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는지, 부모와 교사와의 관계를 더욱 도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지는 않는지, 군인들에게 위문편지를 쓰면 봉사점수를 주는 것이 학생들에게 봉사점수를 받기 위한 노동으로 생각하지 않을지, 위문편지 자체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줄어들지는 않을지 말이다.


  우리가 사회복지 정책을 시행하고 또는 사회복지 사업(프로그램)을 실행함에 있어서 당장의 성과주의에 눈이 멀어 재정적 인센티브를 남발하기에 앞서 먼저 도덕적 평가를 내려야 한다. 인간의 삶은 어떤 경우에라도 도덕적 영역 안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사회복지사가 (또는 공무원이) 사회복지를 행할 때 재정적 인센티브에 의존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려면, 인센티브가 보호해야 할 사회복지의 가치와 도덕적 규범을 변질시키는지 아닌지 생각해보면 된다. 사회복지는 결국 ‘도덕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 이 글의 내용 일부는 Michael J. Sandel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발췌 요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