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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을 막을 최후의 보루

오아시스(沙泉) 2022. 2. 7. 23:14

  어릴 적 내가 살던 고향은 태백산맥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낙동강의 젖줄인 위천(渭川)이 마을 앞을 가로질러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한적한 산골마을이었다. 여름이면 또래 친구들과 함께 개울가에 나가 물고기도 잡고 물장구도 치다가 배가 고프면 지천에 널린 산딸기며 이름 모를 열매들을 따먹다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곤 했었다. 벌써 30년도 넘게 지난 이야기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어린 아이들이 제법 많아서 마을에 생기가 돌았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근처에 수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내가 살던 동네는 어이없게도 물에 잠겨 버렸고 마을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우리 집 삼부자(三父子)가 다녔던 마을 근처 초등학교가 폐교되더니, 얼마 전에는 읍내에 있던 중학교마저도 폐교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고 있는 몸이라 가끔씩 고향집을 찾아 가 마음의 안식을 찾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고향마을에는 하나둘씩 빈집이 늘어나고 더 이상 어린 아이들이 없는 골목길은 스산한 기운마저 감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린 시절 소중한 추억들이 점점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다. 도대체 지금 농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상은 농촌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의 과정에서 젊은이들은 점점 도시로 떠났고, 현재는 농촌인구가 전체인구의 20%도 넘지 못하고 있다. 농촌의 고령화 현상도 매년 신기록을 갱신중이다. 2015년 이미 농가의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40%를 뛰어 넘었고, 그마저도 2030년 후에는 80%가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같은 추세라면 2040년에는 농촌인구비율이 8%대로 곤두박질 칠 것이라고 하니 농촌붕괴라는 재앙이 현실이 되고 있다.

  고령화 국가라고 하면 이웃나라 일본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의 인구 고령화 문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먼저 시작됐다. 일본 내 농촌지역 대부분도 저출산과 고령화로 심각한 인구감소에 고민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일본은 고령화 국가라는 말보다 세계적으로 장수국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제 백세시대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언제까지 인구가 고령화되는 현상을 문제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이웃나라 일본의 선례는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된다. 일본은 어떻게 고령화와 농촌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을지 그 비결이 궁금해진다.

  최근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일본의 한 시골마을에 젊은 청년들이 몰려들면서 마을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산과 바다가 잘 어우러진 도쿠시마현 미나미마을의 이야기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폐점한 상점들이 즐비했던 미나미마을에 한 IT기업이 위성사무실(지점)을 열면서 긴 가뭄에 단비처럼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요즘 같은 초고속 인터넷시대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업무를 하는 IT기업은 사무실 장소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본사와 멀리 떨어진 시골마을에 위성사무실을 만들어도 운영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 IT회사는 회사업무와 함께 개인의 취미 활동,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맡은 업무가 끝나면 언제든 자유롭게 취미활동을 즐긴다고 한다. 농사를 짓고 싶은 직원은 농사를 짓게 하고 서핑을 즐기고 싶은 직원은 서핑을 할 수 있게 했다. 이 회사의 엽기적(?)인 운영방식이 점점 세상에 알려지자 도시에서 늘 구인난을 겪던 회사에 지원자가 쇄도했고, 얼마 가지 않아 도쿄에 있던 본사를 농촌으로 옮기는 역전현상까지 나타났다고 한다. 요즘 이슈화되고 있는 스마트워크를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실제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회사의 성공소식이 전해지면서 도시에 있던 다른 IT기업들도 농촌에 위성사무실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IT기업뿐만 아니라 광고회사나 고객상담 업무를 하는 회사들도 속속 자리를 잡으면서 미나미마을의 상가거리에는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죽어가던 농촌마을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본과 마찬가지로 농촌의 인구소멸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떨까?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화재의 중심이 된 여자컬링 국가대표팀. 출중한 실력도 실력이지만 경기 중에 영미~!’를 외치는 모습이 한 동안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의 고향이 경북 의성군으로 알려지면서 의성군의 지역특산품인 마늘로 인해 갈릭소녀들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평소에는 국민들에게 이름도 낯선 의성군이 올림픽을 계기로 지역특산품인 마늘도 함께 때 아닌 유명세를 탔다. 그런데 지방의 작은 농촌도시 출신 소녀들이 동계올림픽 사상 최초로 컬링종목 은메달을 획득한 것도 놀라운 일인데, 국민들을 더욱 놀라게 한 사실은 의성군이 10년 안에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의성군은 인구 53000명의 소도시로 우리나라에서 인구가 가장 작은 지역으로 손꼽힌다. 10년 전에 비해 인구가 30%이상 감소했고, 노인인구비율은 39.2%로 전남 고흥군과 함께 1,2위를 다투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던 와중에 올림픽의 여파로 갑자기 전 국민의 관심이 의성군으로 쏠리자 의성군청에서는 부랴부랴 인구증가대책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각종 전입지원금과 결혼장려금 등을 돈으로 할 수 있는 지원하는 방안은 모조리 내놓았다. ‘컬링학교를 만들자는 제안도 나왔다. 결국에는 전국 최초로 출산통합지원센터를 건립하기로 했다. 이 또한 국가대표 갈릭소녀들 덕분에 생긴 올림픽의 또 다른 성과라고 볼 수 있겠지만 내놓은 대책치곤 미봉책인 것 같아 왠지 아마추어 느낌이다.

  지방소멸의 담론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은 일본의 정치인 [마스다 히로야]. 2014지방소멸이라는 책에서 마스다는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지방에 중핵도시(Core City:특례도시)를 만들어 인구 유출을 막고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게 만들자고 제안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마스다가 말한 중핵도시를 만들려면 명문대학이나 유명한 기업을 이전한다던지 무언가 커다란 매력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그렇게 정부정책에 의한 반강제적인 이주정책은 빠른 성과를 볼 수 있을지언정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IT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농촌지역에 위성사무실을 열어 젊은이들에게 스마트워크를 실현하고 있는 사례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무언가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책으로 건물을 자꾸 짓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최근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 제주도 한 달 살이가 유행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주도에 명문대나 기업의 일자리가 있어서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소확행이 삶의 목표인 요즘 젊은이들에게 제주도는 분명 매력이 있는 곳임에 틀림없다. 농촌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도시보다 부족한 약간의 정주여건만 개선한다면 농촌은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된다.


  나는 사회복지사니까 간단한 사회복지정책만으로도 농촌에 젊은이들을 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농촌지역에 사회복지관을 건립하는 것이다. 사회복지관을 건립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건물부터 짓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반드시 건물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기존의 사회적 인프라만 활용한다면 건물을 짓지 않고서도 충분히 사회복지관을 건립하고 운영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웬만한 지방 소도시라도 사회복지관 하나씩은 운영되고 있는데 건물이 있는 사회복지관은 하나면 충분하다. (물론 사회복지관이 하나도 없는 지역이라면 한 곳 정도는 예쁜 건물로 지었으면 좋겠다.) 농촌지방을 예로 들면 군()지역에 있는 사회복지관을 거점으로 읍면지역에 사회복지관 분관을 두고, ()()지역으로 사회복지사들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사회복지관도 경찰서-지구대, 보건소-보건지소-보건진료소의 개념으로 운영하자는 것이다. 굳이 사회복지관 건물을 지을 필요 없이 읍면사무소나 마을회관, 보건지소 등을 활용해서 사회복지사들이 잠시 들러 행정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 맞춤형으로 찾아가는 복지가 시작된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간다. 사회복지관은 더 이상 도움이 필요할 때 찾아가는 이용시설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일본의 IT회사처럼 사회복지사들의 업무여건을 개선해주고, 현재의 전입지원정책을 융합하면 젊은 사회복지사들이라도 기꺼이 농촌으로 향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농촌재생정책에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인류의 시작은 농촌에서 비롯되었다. 과학이 발전하고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불변의 진리다. 농촌지역의 인구 고령화 문제, 청년실업문제, 지역의 복지사각지대문제, 농촌소멸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은 바로 사회복지관이다. 사회복지관은 지방소멸을 막는 최후의 보루다.


* 이 글은 <사회복지사가 꿈꾸는 사회복지(황소걸음, 2021)>의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