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복잡(알고보면 쓸데없는 사회복지 잡생각)

글쓰기 삼다(三多) - (3) 다상량(多商量) 본문

사회복지사의 글쓰기

글쓰기 삼다(三多) - (3) 다상량(多商量)

오아시스(沙泉) 2021. 9. 9. 18:52
  글쓰기에는 철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잘 쓰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고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축구나 수영이 그런 것처럼 글도 근육이 있어야 쓴다. 글쓰기 근육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쓰는 것이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그래서 '철칙'이다.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평소 유시민 작가가 쓴 글을 좋아하고 또 최근에 그가 쓴 글쓰기 관련 책을 읽고 많이 공감을 했다. 그런데 유시민 작가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 대부분은 글을 잘 쓰는 방법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바로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글쓰기 삼다(三多)'가 그것이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좀처럼 실천에 옮기기란 쉽지가 않다. 현대사회는 옛날보다 점점 많이 복잡해지고 삶은 더 팍팍해졌다. 책읽기는 고사하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세상이다. 더군다나 사무실에서 매일같이 서류와 보고서에 파뭍혀 살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글쓰기 삼다(三多)'를 실천하기란 정말 쉽지가 않다. 그런데 잘 쓰고는 싶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현대사회를 사는 직장인들은 '글쓰기 삼다(三多)'를 현실에 맞게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글쓰기 삼다(三多)' 마지막 시간으로 ‘다상량(多商量)’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글쓰기 삼다(三多)의 유래는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중국의 송나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송나라의 이름난 문인인 구양수(歐陽脩, 1007~1072)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삼다(三多) 즉,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다독과 다작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다상량(多商量)은 쉽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 다상량은 ‘헤아릴 상(商)’과 ‘헤아릴 양(量)’의 한자어의 조합으로 '많이 헤아린다'는 뜻이다. 글쓰기에서 '많이 헤아린다'는 것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글쓰기 이전이나 평소에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헤아려 세상의 이치를 판단하기 위한 사유(思惟)의 과정을 의미한다. 사유의 과정은 글쓰기의 가장 큰 동기가 된다. 둘째, 글을 쓰고 나서 자신이 쓴 글을 수정에 수정을 거치는 퇴고의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무리 자신이 쓴 글이라고 해서 비판적인 자세로 다시 읽어보지 않으면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이렇듯 글쓰기에서 ‘다상량(多商量)’은  ‘삶의 철학과 이성적인 판단’이 합쳐진 좀 더 고차원적인 사고(思考)를 의미하는 듯하다.

구양수(歐陽脩, 1007~1072)


Text를 읽지말고
Context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

 

  글을 쓸 때도 다상량이 중요하지만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생각 없이 읽는 글은 단지 텍스트(text) 해석에 불과하다. 글을 읽을 때는 text가 아니라 context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context는 text와 연관되는 모든 주변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문맥’ 또는 ‘맥락’을 뜻한다. 글의 context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text를 헤아려가며 읽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다상량'이다. 생각하며 읽는 글은 속도는 더딜 수 있어도 읽고 나면 오롯이 내 것이 된다. 글을 쓸 때도 '다상량'해야 한다.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고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글을 쓸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글의 주제를 생각하며 문장을 써내려가야 context가 완성된다. 생각 없이 쓴 글은 군더더기가 많고 주제의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하게 되고 context를 파악하기 어렵다. '다상량'하지 않으면 절대로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참모들과 회의자리에서도 회의 중에 가끔씩 대화가 끊기는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곤 했다고 한다. 참모들의 의견에 잠시 생각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대통령의 말은 모두 참모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발언들이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원인 진단에서부터 대안 제시까지 하나의 사안을 전후좌우로 헤아려 의견을 낸 것이었다. - 대통령의 글쓰기

 

  우리나라에서 존경받는 대통령(-많지는 않지만-)들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바로 생각이 많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나 업무결재를 할 때 빼고는 항상 독서를 하거나 정원을 산책하면서 늘 생각하고 또 생각을 했다고 한다. 생각은 글을 읽거나 쓸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도 생각해야 한다. 우리에게 존경받고 있는 대통령은 말이나 글의 context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한 사람이다.

 

사람은 항상 생각하며 살지는 않지만
글을 쓰면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이 항상 생각하면서 산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사람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생각을 하지 않고 어떤 특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비로소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방 문을 열 때 문고리를 왼쪽으로 돌릴지 오른쪽으로 돌릴지 생각하고 문을 열지는 않는다. 그런데 늘 열고 닫던 문이 갑자기 열리지 않을 때 '어라? 문이 왜 열리지 않지?'라고 바로 그 때 사람은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매번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왠지 서글퍼진다.

 

 

  생각하는 삶을 사는데 그리 어렵지 않은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글쓰기다. 하루를 마치고 잠들기 전에 일기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기를 쓰기 위해 우리는 하루의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잠깐 생각에 빠진다. 글을 쓸 때는 많이 생각하면 그만큼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 필자도 글을 써야 할 주제가 정해지면 한 동안 그 주제에 관한 생각에 푹 빠져 산다. 억지로 하는 생각이 아니라 밥을 먹거나, 샤워하거나, 화장실을 갔을 때 우연히 글쓰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한 줄도 써지지 않는 날에는 차라리 산책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면 더 좋다. 


  사무실에서 글쓰기도 '다상량'부터 시작하자.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본다고 해서 글이 써지는 것은 아니다. 글은 생각해야 써진다. 보고서가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컴퓨터를 끄고 산책을 나가거나 잠깐이나마 독서를 하는 편이 오히려 더 낫다. 아니면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보고서라면 차라리 다른 일을 먼저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생각은 억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 육체노동이 아니다. 좌뇌는 우뇌의 활동을 간섭한다고 한다. 다르게 말하면 우뇌가 활동을 안하면 좌뇌의 활동도 줄어든다는 말이다. 글쓰기는 아무래도 좌뇌를 많이 쓰게 되는 정신노동이다. 업무 중이라도 좌뇌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을 고민해보자.

 

  직장생활을 10년이상 해오고 있지만 사무실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1분1초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독서는 왠지 사치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매일매일 글을 쓰는 직장인에게 독서는 쓰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독서를 하는 것은 생각을 환기시키기에 좋은 활동이다.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책 한 권도 읽기 어려운 사무실 분위기에서 과연 영화감상이 가능할 지 모르겠다. 사무실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생각할 일들을 만들자. 덤으로 직장상사의 칭찬이 돌아올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은 반복적인 상황에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을 많이 하기 위해서라도 매일매일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자. 그러면 보고서도 잘 쓸 수 있겠지만 인생도 즐거워 질 것이다.


  사무실에서도 자신 있게 책을 읽자.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관리자라면 부하직원이 보는 앞에서 먼저 책을 펼치길 바란다. 

 

  글쓰기에는 비법이나 왕도가 없다. 지름길이나 샛길도 없다. 그래서 다들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무슨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면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무허가 비닐하우스에서 태어난 사람이든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가 상속자든, 글쓰기를 할 때는 만인이 평등하다. 잘 쓰고 싶다면 누구나, 해야 할 만큼의 수고를 해야 하고 써야 할 만큼의 시간을 써야 한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