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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회복지를 할 것인가?(2)

오아시스(沙泉) 2023. 9. 13. 19:14
삶을 디자인 하는 건축, 사회복지
140년이 넘도록 공사 중인 성당

  1882년 착공을 해서 현재까지 140년이 넘는 시간동안 공사가 진행 중인 성당이 있다. 바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중심부에 우뚝 솟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ilia)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 1852-1926)가 설계를 맞아서 우리에게 '가우디 성당'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전 세계적으로 근대를 지나 현대에 걸쳐 지어지고 있는 유일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또 미완성 건축물로는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매년 수백 만 명의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으로 유명하다.

바르셀로나 시내 중심부에서 공사 중인 파밀리아 대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이토록 오랜 기간동안 공사가 진행 중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한 가지는 아마도 엄청난 규모에 있지 않을까 싶다. 성당이 완공되면 중앙첨탑의 높이가 무려 172.5m나 된다고 한다.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인 독일의 울름 대성당(161.5m)보다도 11미터나 더 높아져서 세계 최고(最高) 성당의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니 그 크기가 얼마나 될지 감히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계산해보니 60층 아파트보다 더 높다.)

  요즘에는 건축기술이 발달해서 높이가 수백 미터인 고층 빌딩도 뚝딱 만들어내는 세상이 됐다. 우리나라 대표 랜드마크가 된 서울 잠실 롯데타워(555m)는 건축기간이 6년이 걸렸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아랍에미리트에 부르주 칼리파(828m)는 5년이 걸렸다. 그리고 미국 뉴욕을 상징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381m)은 불과 13개월만 완공됐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높이가 고작(?) 172m에 불과한데 140년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완공을 하지 못한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신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설계자 가우디는 성당의 공사기간을 자그마치 20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지금부터 60년 뒤인 2082년이 돼야 완공된 성당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가우디는 자신이 살아생전에 성당이 완공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죽더라도 후임 건축가들에 의해 성당 건축을 계속 이어나가야 했기에 최대한 정교하고 세밀한 설계도를 남기려고 노력했다. 또 천재 건축가답게 역학적으로 완벽하고 안정된 구조의 성당을 설계하기 위해 모형을 실험하는 데만 10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가우디는 조금 느리지만 꼼꼼하고 세심한 작업을 추구하는 건축가였다. 그는 세상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특별하고 정교한 성당을 짓기 위해 신에게 기도하듯이 간절하게 성당 건축에 매달렸다. 말년에는 공사 중인 성당 지하실에 사무실을 차리고 숙식까지 해결해가며 건축에만 매진했다고 하니 건축가로서 진심이 전해지는 듯하다. 가우디의 이러한 꼼꼼한 성격 때문에 공사가 시작된 지 30년이 지나도록 성당의 지하실만 겨우 완성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오로지 기부와 헌금으로만 지어지는 성당이라 건설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스페인 내전(1936~1939)이 일어나고 그의 건축 사무실까지 피해를 입어 공사는 더 늦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도 가우디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신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가우디가 74세가 되던 해, 자신이 건축 중인 성당 앞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남루해서 사람들은 사고를 당한 사람이 가우디인 줄도 몰랐다고 한다.  뒤늦게 가우디의 죽음을 알게 된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그의 시신을 성당 지하에 안장했다. 그리고 무덤에 이런 글을 남겼다.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으로
위대한 예술가이며
경이로운 이 교회의 건축가
이 위대한 인간의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을 기대하노라.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40년 넘게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단 하나의 건축물이다. 비록 자신은 완공된 성당의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한 천재 건축가의 열정은 고스란히 후대에 전해져 1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여전히 빛나고 있다.

길어야 5년, 사회복지 일몰사업

  나는 사회복지사로 고작 20년도 채 살지 못했다. 죽을 때까지 건축가의 삶을 산 가우디의 열정에 비하면 아직 새 발에 피다. 그마저도 직장을 이곳저곳 옮겨 다니느라 거장 가우디의 열정과 감히 비교할 처지가 못 된다. 잠시 돌이켜보면 나는 이직을 할 때 항상 새로 생긴 기관으로 옮겼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도 새로 생긴 곳이고, 이전 직장도 그랬고, 그 이전 직장도 그랬다.  심지어 사회복지를 처음 시작한 기관도 전국 최초로 생긴 곳이었다. 소위 말하는 오픈멤버만 5번째다. 내가 짧은 경력의 사회복지사로 운이 좋게 메뚜기처럼 직장을 자주 옮겨 다닐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사회복지에서 새로운 기관이 많이 생겨난 덕분이기도 하다. 농담이 아니라 유난히 사회복지 분야에는 시범사업이니 뭐니 하면서 새로운 정책과 사업이 시시때때로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나는 제주도에 내려와서 ‘일몰사업’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공무원끼리는 자주 쓰는 일상용어였다. 도대체 공무원들 세계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업들이 생겼다 사라지기에 이런 해괴한 말까지 생겨난 것일까? 그리고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면서 일을 하는 공무원들이 사뭇 놀랍기도 하다. 곧 일몰(sunset)이 될 그 사업에도 분명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말이다.

  일몰사업(sunset provision)은 행정기관에서 추진하는 사업 중에서 이미 당초의 목적을 달성해서 현재로서는 불필요하거나 또는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한 사업, 아니면 갑작스런 상황변동(정책을 만든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하는)으로 더 이상 존재 이유가 희박해진 사업 등을 일정 기간이 지난 시점에서 폐지하거나 재검토하는 것을 말한다[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우후죽순 무분별하게 생겨나는 생경한 사업의 낙장불입(?)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적 장치라고 하니 딱히 할 말은 없지만, 7년 전 나는 바로 그 새로 생긴 낯선 사업 덕분에 원래 살던 곳을 떠나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내려왔다. 그게 일몰사업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내년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요즘 같은 선거철에는 출마를 준비하는 정치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새로운 공약들을 만들어내느라 여념이 없을 시기다. 더군다나 국민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회복지 공약들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정책이기 때문에 좀 더 공을 들여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으면서 자신만의 색깔(보수냐 진보냐 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거기에다 되도록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성과를 낼 수 있고 이름까지 멋들어진 복지정책이면 최고의 공약이 된다. 그런데 당선이 되면 다행일 텐데 (상상하기도 싫겠지만) 만약 선거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마저도 일몰공약이 되고 만다는 게 함정이다.

  (다행히) 어쩌다 공무원(어공)이 된 정치인의 임기는 고작해야 4년이다. 대통령 정도는 돼야 5년이다. 사회복지정책은 백년대계(百年大計)를 가지고 (가우디처럼) 꼼꼼하고 세밀하게 만들어야 할 정책인데, 선거에서 당선을 위해(―겉으로는 국민을 위해―) 마치 번갯불에 콩을 볶듯이 만든 설익은 복지정책에 사회복지의 가치나 철학이 담겨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어공(?)이 된 정치인이 내뱉은 공약을 실행에 옮기는 건 결국 늘공(늘 공무원)들과 사회복지사의 몫이라는 점이다. 공무원들은 그나마 다행인 것이 내키지 않는 정책일지라도 길게는 4년 뒤, 사장님(―사석에서 공무원들이 쓰는 은어―)이 바뀔 때까지 버티거나 아니면 1-2년 뒤에 인사발령이 나서 자신이 떠나면 그만이다. 그런데 사회복지사는 공무원과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어공이 바뀌고, 늘공이 떠나도 사회복지사를 때려치지 않는 이상 삽질(?)은 무한반복된다. 먹고 사는 데 공무원 일과 사회복지사 일이 별 다를 것이 있을까 싶지만,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사회복지 정책 때문에 ‘이게 맞는지’,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회복지 일을 하면서도 자괴감만 켜켜이 쌓여간다.

 

건축과 사회복지

  나는 사회복지도 건축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건축은 집을 짓는 것이다. '집'은 '짓다'의 어근 '짓'의 옛말이라고 한다. 요즘에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물건을 생산하듯 대량으로 찍어내듯 집을 짓는다. 벽도 마루도 천장, 주방가구까지 모두 속이 빈 가짜 무늬로 덮는다. 번쩍거려 잠시 눈을 흘릴 뿐인 가구, 마루, 주방이 오래갈 리 만무하다. 이사를 하면 전부 뜯어내고 다시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 콘크리트로 집을 짓고도 20~30년 만에 재건축이다. 살고 있는 집이 안전하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며 축하 현수막을 내거는 사회다. 그래서 슬픈 현대인들은 "오래된 것은 전부 아름답다"고 절규하면서 오랜 건축 유적, 유물을 찾아 나선다.(김민식, <집의 탄생>, p.105-106) 현대사회에서 집을 짓는 모습이 어찌 이렇게까지 지금의 사회복지와 닮았을까? 동화 속 아기돼지 삼형제의 세 종류 집(지푸라기집, 통나무집, 벽돌집) 가운데 지금 우리가 짓고 있는 '사회복지의 집'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흔히 건축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벽돌을 쌓아 집을 짓고, 도로를 깔고, 지붕을 만들고, 창문을 만드는 일들을 상상한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어 내는 행위들이 건축의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로 건축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삶을 디자인하기 위한 것들이다. 연극을 할 때 우리는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그 스토리에 맞게 무대를 디자인 한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건축가는 먼저 사람의 행위를 디자인해야 한다. 시나리오 없이 연극무대 세트가 디자인될 수 없듯이, 건축가는 사회와 삶의 모습을 그리는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에는 건축물을 디자인해서는 안 된다. 건축은 언제나 인간을 위한 것이었다.(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p.147)

 

  사회복지사도(또는 공무원이) 가우디처럼 수십 년에 걸쳐 사회복지 정책을 설계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사회와 인간의 삶을 먼저 디자인하는 좋은 건축가가 돼야지 않을까? 교회를 짓는 것은 하나님이 집이 없어서가 아니다. 단지 신을 경배하기 위해 교회를 짓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회복지도 우리 사회에 복지가 없어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삶을 보다 행복하게 영위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겠나. 인간의 삶은 단지 5년만 살다 다시 환생을 반복하는 인생이 아니다. 사회복지는 적어도 100년, 대(代)를 이어 후대로 이어질 지속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사회복지 정책을 만들 때는 건축가가 집을 짓는 것처럼 오랜 시간 신중하고 꼼꼼하고 세밀하게 인간의 삶을 먼저 디자인해야만 한다.

  가우디는 죽어서 세상에 없지만 그가 남긴 건축 설계도는 후대에서 넘겨받아 140년이 넘도록 성당을 짓고 있다. 성당을 짓고 있는 사람도, 그걸 지켜보는 사람도 아무도 서두르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은 아직 공사 중인 성당을 지켜보면서 언젠가 완성될 성당의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해 한다. 내가 하는 사회복지도 그랬으면 좋겠다. 조금 더디더라도 상상만 해도 행복한 복지 세상을 꿈꾸면서 말이다.


작업실에서 연구중인 가우디<르카르도 오피소作, 1901>


사족(蛇足): 「소주와 포도주의 건축학」
  좋은 건축물은 소주가 아니라 포도주와 같다. 소주는 공장에서 화학공식에 따라서 대량 생산되는 술이다. 소주는 생산하는 사람이나 지역의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반영되지 않고, 인간과 격리된 가치를 가지는 술이다. 건축물에 비유한다면 찍어 내듯이 양산되는 아파트나 지역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국제주의 양식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반면, 포도주는 좋은 건축물과 같다. 같은 종자의 포도라도 생산되는 땅의 토양에 의해서 다른 포도가 생산되고, 같은 종자의 포도와 같은 밭이라고 하더라도 그 해의 기후에 의해서 다른 포도가 만들어지며, 똑같은 재료라고 하더라고 포도를 담그는 사람에 의해서 다른 맛이 만들어지는 것이 포도주다. 따라서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어서 세상에 단 한 종류밖에 없는 포도주가 완성되는 것이다. 건축도 그래야 한다.
 -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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