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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강화와 임파워먼트의 차이점

오아시스(沙泉) 2022. 4. 8. 19:27

<부제: 사회복지 조직 내 과실편향성에 관하여>

사회복지에서 임파워먼트란?


  사회복지사들이 평소에 자주 쓰는 말 중에 ‘임파워먼트(empowerment)’라는 말이 있다. 비슷하게 많이 쓰는 ‘클라이언트(client, 줄여서 C’t)’처럼 본래 영어지만 한글로 순화하기에는 딱히 어울리는 단어가 없어서 그냥 원어발음 그대로 쓰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같은 말이라도 영어로 쓰면 왠지 (전문성이) 있어 보이기 때문에 ‘임파워먼트’도 ‘클라이언트’와 함께 오랫동안 사회복지에서 그런 의미로 애용(?)하고 있는 말인 것 같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임파워먼트는 두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첫째는 사회복지실천에서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로 하여금 자기 삶에 대한 결정과 행위에 있어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사회복지사가 일을 하는데 개인의 능력고취나 역량강화의 의미로 자주 쓰인다. 원래 영단어 ‘empowerment’는  '주다'라는 의미를 가진 접두사 ‘em-’과 ‘권력’, ‘권한’이란 의미의 'power'가 결합된 용어로 ‘권한이양’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조직에서 리더가 업무수행에 필요한 책임과 통제력 등을 부하 직원에게 이양하고 권한을 부여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조직 구성원들이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해서 조직문화를 유연하게 이끌고 변혁이 신속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기업경영에 임파워먼트의 활용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사회복지의 기본 권력관계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사회복지사 등)과 수혜 받는 사람(클라이언트) 간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보면, 사회복지 임파워먼트 즉, ‘권한이양’은 사회복지사에서 클라이언트로의 권한이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복지 바닥에서 클라이언트는 언제나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며,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임파워먼트를 통해 클라이언트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으로 변화시켜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주체적인 선택권과 결정권을 가지며, 서비스 제공자인 사회복지사와 수평적 관계에서 상호교류하면서 서비스의 성과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성과가 있겠나 싶다. 단어의 의미만 가지고 보면 임파워먼트는 사회복지 실천과정에 있어서 최고의 실천방법임에 틀림없다.

임파워먼트는 역량강화?!

  나는 일을 하면서 ‘임파워먼트’라는 말을 정말 많이 썼던 것 같다. 또 주변에서 많이 듣기도 했다. 그만큼 사회복지에서 ‘임파워먼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글을 쓰면서 ‘임파워먼트’의 의미를 찾다보니 사회복지사가 일상에서 쓰는 ‘임파워먼트’가 본래의 뜻과는 많이 왜곡되어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흔히 사회복지에서 임파워먼트를 쉽게 설명할 때, ‘배고픈 사람에게 물고기를 잡아 주기보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일시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배고픔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자립을 돕는 것(임파워먼트)이 바람직한 복지라는 말이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보니 별 의심 없이 수긍하게 된다. 그런데 한 번 더 곱씹어 생각해보면, 이러한 관점의 임파워먼트는 ‘권한이양’ 과는 좀 거리가 멀다. 오히려 ‘역량강화’의 의미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사회복지사(또는 클라이언트)도 자신의 부족한 역량(ability)을 깨닫고 그것을 스스로 채워 가는 역량(competency)은 얼마든지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자신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깨닫기도 전에 타인(―관리자, 감독자, 사회복지사, 지침, 규정 따위―)에 의해 강제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싶다. 내가 정말 일을 하는데 역량이 부족하긴 한 건지, 부족하다면 키워야할 역량은 무엇인지, 그걸 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 알아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인지....... 이렇듯 모호한 상황에서 역량강화를 업무의 일환으로 받아들이고 시간만 때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도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4년씩이나 배우고, 그것도 모자라 없는 살림에 대학원까지 가서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공부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사회복지 바닥에서 굴러먹으면서 못 볼 꼴 다 보며 현장경험까지 쌓았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내 역량이 부족해 앞으로 계속 누군가에 의해 임파워먼트(역량강화)를 해야 할 지경이라면 나는 사회복지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스스로 역량강화가 필요해서 했던 일들(―이를테면, 학업, 공부, 사회경험 등―)을 가지고 ‘임파워먼트를 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개인적인 사소한(?) 노력들은 ‘임파워먼트’라고 하지 않고 ‘자기계발’이라고 말하는 게 맞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임파워먼트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외부)에 의해 수동적으로 역량이 강화되는 것, 특히 사회복지사에게 임파워먼트는 보수교육, 워크숍, 기관방문, 해외연수(?) 등을 의미한다. 힘들게 공부해서 자격을 따고 어렵게 취직을 해서 현장에 나왔지만 처음에는 신입이라서, 시간이 지나 경력이 쌓여 승진이라도 하게 되면 관리자라서, 말년에 어쩌다 기관장이라도 되면 최고관리자라서,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의무적으로(또는 법적으로) 임파워먼트를 하게 되어 있다(해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클라이언트나 아니면 잠재적(?) 클라이언트인 지역주민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교육프로그램, 체험학습, 실습, 견학, 해외연수(?) 등등....... 일 년 내내 클라이언트와 지역주민의 역량강화를 한답시고 그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눈앞의 성과만을 위한 과실편향성

  우리가 그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직문화를 다루는 책에서는 일을 하는 이유를 여러 가지 동기요인들을 들어 설명하곤 하던데, 그것들은 결국 조직의 목표달성과 성과를 얻기 위한 것이다. 사회복지사도 자신이 속한 조직의 목표달성과 서비스 성과를 높이고자 그토록 많은 시간을 들여 임파워먼트(역량강화)를 해 왔던 것이 아니겠는가. ―사회복지에서 ‘성과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고― 그런데 우리가 사회복지 성과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소위 ‘물고기 잡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임파워먼트)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어 왔다. 그가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 이유를 낚시대가 고장났다거나, 그가 물고기가 없는 오염된 강에 산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배고픔의 원인을 사회 분위기나 환경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판단과 능력부족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이 내리는 선택이 개인의 가치와 신념, 자신이 받아 온 교육에 따른 결정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 싶어 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아주 작은 변화에도 인간의 선택이 쉽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하지만 사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따라 자신이 가진 신념과 가치를 쉽게 포기하고 만다.

  인간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주어진 상황은 선택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일까? 왜 우리는 게임판이 아닌 플레이어를 바꾸기 위해 그토록 많은 노력을 했던 것일까? 왜 조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역량강화하기 전에 사람들이 스스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문화를 구축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문제의 원인을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돌리려는 ‘과실 편향성(blame bias)’ 때문이다.

  과실 편향성은 사회복지사 관점의 임파워먼트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겉으로는 사회복지사의 동기부여와 조직 구성원으로서 의사결정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시키기 위해 임파워먼트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역량강화의 명목으로 업무와 관련된 교육이 전부다. 역량강화교육 어디에도 ‘권한이양’에 대한 내용은 없다. 임파워먼트의 의미를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권한을 넘겨주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사회복지 조직에서 이러한 과실 편향적 상황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어느 날 기관장이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니 왠지 답답해 보이고 비효율적이다. 다른 조직과 비교해도 우리 조직의 성과는 많이 뒤쳐져 있다고 느낀다. 이럴 때 기관장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해결책은 직원들의 임파워먼트 즉, 역량강화를 위해 교육을 실시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역량강화를 해야 할 사람은 조직을 이 지경까지 몰고 온 기관장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임파워먼트를 한답시고 권한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직원들에게 이양해버리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을 벌인다. 이런 일들은 사회복지 현장에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사회복지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과실 편향의 이면(裏面), 피그말리온 효과

  지금까지 사회복지에서는 임파워먼트라는 미명아래 클라이언트와 사회복지사의 역량강화를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그 결과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클라이언트에게는 배고픔의 원인을, 사회복지사에게는 과실의 책임을 개인의 역량부족으로 치부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오랜 관례인 것처럼 이어져 오고 있다. 물론 책임을 져야할 사람도, 책임을 떠안은 사람도 그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예컨대, 조직 내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또 일을 항상 엉망으로 처리하는 사람을 보고는 그 사람이 똑똑하지 않고 일머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항상 이와 같은 과실 편향성에 갇혀 상황을 바꾸려 노력하지 않고 당사자(클라이언트, 사회복지사)를 비난하면서 책임을 밀어낸다. 그리고 해결책은 언제나 그랬듯 역량강화가 유일한 답이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사회복지사의 역량강화에 드는 예산과 업무환경이나 조직문화를 바꾸는데 드는 예산이 얼마인지 그 차이가 사뭇 궁금해진다. 직원에게 잘못을 돌리는 성과 시스템(직원 역량강화 시스템)은 당장 눈앞의 성공을 이룰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고(高)성과 조직문화를 갖춘 조직에 비해서는 턱없이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잘못(과실)에 대한 편견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그것은 대답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답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바로 잘못된 편견을 긍정적인 편견으로 바꾸면 그만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기대심리를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고 하는데, 그로 인해 발현되는 현상을 가리켜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 한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조각가를 보고 감동한 신(神)이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이야기다. 즉, 긍정적인 기대나 관심을 가지면 실제로 그 대상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효과를 말한다. 어떤 아이에게 “너는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어”, “넌 잘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면 그 아이는 실제로 과학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수차례 실험을 통해 검증된 사실이다. 타인이 자신에 대하여 긍정적인 기대감을 가지면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노력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좋은 결과를 이루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것 같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과실 편향성의 이면(裏面)이다. 조직의 리더가 과실편향 대신 긍정편향을 가지면 돌(石)로 보이는 직원에게도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다. 우리 조직에 속한 구성원들을 최고의 직원이라고 대놓고 편향적으로 생각한다. 문제 상황이 발생해도 과실의 책임을 직원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상황이나 환경 탓으로 돌린다. 더군다나 내가 조직 안에서 책임질 위치에 있다면 모든 책임을 내가 떠안으면 된다. 그러면 된다. 채용과정에 문제가 없고, 최고의 직원을 채용했다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과실에 대한 비난이 사라지면 기대감은 높아진다. 기대감이 높아지면 리더는 본능적으로 총 동기 원칙―직접동기*는 높이고, 간접동기*는 낮추는―을 활용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조직의 성과가 높아지게 된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조직 구성원들을 역량강화 없이 성과를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다. 그것이 바로 임파워먼트다.


* 사람은 객관적 상황이 아닌 자신이 해석한 상황에 반응하며, 이러한 반응들이 모여 해석한 대로 전개되는 현상을 말한다.
* 직접동기는 조직의 성과를 높이는 동기 (즐거움, 의미, 성장)
* 간접동기는 조직의 성과를 낮추는 동기(정서적 압박, 경제적 압박, 타성)
※이 글은 「무엇이 성과를 이루는가, 닐도쉬, 린지 맥그리거 지음, 생각지도(p.114-133)」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 요약했습니다.

사족...

"뿌린 대로 거둔다(As you sow, So shall you REAP)"
- REAP방식의 피드백

1. 기억하라(Remember) : 책임을 묻기 전에 먼저 이 말을 기억하자.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2. 설명하라(Explain) : 잘못을 따지기 전에 내가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하라.
3. 질문하라(Ask) : 직원의 좋은 의도를 먼저 언급한 뒤 이유를 물어라.
4. 계획하라(Plan) : 함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찾아라.